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보험범죄는 뚜렷한 특색을 갖고 있다. 보험이 일찍부터 시작된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형태의 보험범죄가 우리나라에서는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범죄의식이 없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범죄가 드러났을 때는 고객를 떨어뜨리지만 보험범죄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당당한 경우도 많다.
보험범죄 색출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카스코손해사정법인 김영중(金永中) 사장은 『교통사고로 위장하거나 경상인데도 병원에 장기 입원중인 속칭 나이롱환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스스로는 피해자로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회에서 노력한만큼 대우받지 못했는데 돈 많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약간 받아낸게 그토록 죄가 되느냐」는 의식이 보험범죄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가진 자의 부와 권위에 대한 거부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보험범죄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생활고가 가중되고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더욱 더 커진 계층간 위화감이 보험범죄의 인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계층간 조직화= 일부 보험사들은 태백·영월·대천 등 탄광지역의 보장성보험 계약에 대해서는 아예 받지 않거나 심사규정을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
주로 탄광지대인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보험계약이 보험범죄로 악용됐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정직업 종사자도 기피대상이다. 택시나 버스기사들이 대표적인 예. 이들의 계약이 보험금을 노린 위장계약으로 나중에 보험사기나 범지로 연결됐던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 연루자 200여명, 보험금 피해액 100억대로 사상 최대 보험범죄 기록을 세웠던 보험범죄건도 중심무대가 강북지역의 한 택시회사였다. 일부 지역·계층에서 시작된 보험범죄는 최근들어 전국적으로 전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장개방·경쟁심화가 보험범죄의 출발점=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활환경에 있던 탄광지역과 운수업 종사자들의 대형보험범죄가 표면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부터. 보험시장 개방 1년후 시점이다.
보험시장 개방으로 외국사가 몰려들고 내국인에게도 신규설립이 허용되면서 우후죽순격으로 보험사가 생겨난 후 최초로 나타난 현상은 경쟁심화.
이전까지 보험사각지대였던 탄광지역에도 갑자기 보험사 영업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탄광지역에서 본격 영업을 펼친 보험사들은 놀랐다. 기다렸다는 듯 계약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안지나 즐거운 비명은 고통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신규보험료를 끌어들인지 6개월이 채 안지나 여기저기서 거액의 보험금 청구가 밀려들었던 것. 대부분 보험금이 지급됐다. 실제로 사고가 발생했고 병원 진단서도 첨부했다.
지급되는 보험금이 너무 많아지자 조사에 들어간 보험사들은 곧 엄청난 규모의 보험범죄가 집단적으로 발생했음을 알았다. 계약자 뿐 아니라 일부 병·의원도 보험범죄에 가담했다. 어떤 병원은 아예 보험금 환자만 전담하는 병원도 있었다.
같은 유형의 보험범죄는 택시·버스회사에서도 발생했다. 열악한 근무·생활 여건과 보험사들의 과당경쟁, 건전·건강한 근로정신의 실종과 배금주의가 맞물려 일어난 현상이다.
보험사들은 특정 지역·직업에 대해서는 경계를 취하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다소 진정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전국규모로 확산= 90년 이후 가속화한 탄광지역의 공동화현상은 탄광인구를 전국 각지로 분산시켰다. 보험범죄로 한 몫잡은 사람들과 옆에서 그 수법을 소상히 전해들은 사람들도 전국으로 흩어졌다. 무대가 특정지역에서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보험사 관계자들은 『90년대 이후 적발되는 보험범죄의 줄기를 캐고 올라가면 꼭 탄광지역이 나온다』고 말한다. 초기에 잡지 못한 전염병처럼 보험범죄는 이제 전국·전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채산성이 나빠진 병원들도 보험범죄를 거들고 있다. 일부 악덕 병원들은 브로커와 짜고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장기입원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보험사 직원과 설계사도 이들의 범죄를 돕고 있다.
때문에 요즘 적발되는 보험범죄 사건은 연루자가 수십명을 넘고 병원과 보험사직원을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