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훈을 제친 구리가 새로운 3번기의 상대로 맞이한 한국 기사는 최철한이었다. 최철한은 ‘이창호킬러’로 용명을 떨치고 있었지만 구리로서는 그저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1년 전의 한중천원전에서도 구리가 2대1로 이겼고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도 구리가 이긴 바 있었다. 최철한은 한중천원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후지쯔배 결승에서 이세돌에게 패하고 전자랜드배에서는 이창호에게 패하여 다소 풀이 죽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한국 기사들의 ‘공동의 적’인 구리를 꺾어 면목을 일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백12까지는 한중신인왕전 3번기에서 구리와 박영훈이 두었던 진행과 똑같다. 그 바둑에서 박영훈은 흑13으로 가에 벌렸는데 최철한은 타이트하게 한칸 좁혀서 벌렸다. 흑19를 두기 전에 최철한이 5분쯤 뜸을 들이자 사이버오로 해설실의 정대상9단이 낯익은 가상도 하나를 만들어 서비스에 나섰다. 참고도의 흑1과 백2.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흑1까지 선수로 활용하려는 것은 과욕입니다. 백은 2로 걸칠 것이 뻔합니다.” 얼마 전에 소개한 한중신인왕전 제1국의 해설을 맡았던 박지은 5단의 말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정대상9단은 1957년생. 난전의 명수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난전을 벌이는 일이 예전보다 드물어졌기에 필자가 물어 보았다. “싸움이 싫어졌어?” “아뇨. 싫어진 건 아닌데 요즘 아이들이 약아빠져서 웬만해선 정면 승부로 나와 주질 않아요. 무조건 승산 적은 난투를 벌일 수도 없고 해서 나도 기다리는 바둑을 두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