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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중년'(重年)이 아니다, 인생의 중간이자 한창 때인 '중년'(中年)이다."
평균 기대수명 100세 시대, 40~60대 중년들의 로맨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괜한 눈초리가 신경쓰여 되도록 감추기 바빴던 그들의 로맨스가 당당히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젊은 중년들이 새로운 생산층으로 부상하면서 동반되는 현상이다. 시대를 앞서서 반영하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이들 중년의 변화를 먼저 표현하고 있다.
◇중년의 로맨스, 대중문화를 달구다=업계에 따르면 결혼정보업체 40·50대 중년 가입자는 전체의 30%나 차지한다. 이 수치가 방증하듯 사랑은 더 이상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년 세대가 이제 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벗어 던지고 양육·뒷바라지 등 어른 역할을 털어버리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시작한 셈이다. 최근 이 같은 중년의 솔직하고 당당한 로맨스가 소재가 돼 영화와 방송 등 대중문화 콘텐츠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오는 13일 개봉 예정인 영화 '관능의 법칙'은 인생의 맛을 조금은 안다는 40대 여성의 성(性) 담론을 대담하게 표현했다. '타 죽기 전에 불 타 오를거야'라는 영화 속 대사가 말하듯, 40대 여자도 여전히 욕망할 줄 안다는 걸 솔직하게 그려낸다.
지난해 12월 22일 첫 방송 돼 평균 17% 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KBS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끝사랑' 역시 솔직하고 당당한 돌싱 중년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려 호평 받고 있다.
극 중 정사장(정태호)이 김여사(김영희)에게 "애기야"라고 부르며 능글맞은 대사로 구애를 펼치면 김여사는 콧소리 잔뜩 섞인 "앙대요(안돼요)"를 외치며 애교를 부리고 부끄럼을 탄다. 이 커플 옆에는 존댓말을 쓰면서 점잖게 연애하는 또 다른 중년 커플이 나와 대비되는 웃음을 자아낸다.
MBC 주말 드라마 '사랑해서 남주나'는 인생의 황혼기 초입에 들어서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는 60대 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충실히 밟아간다.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극 중 정현수(박근형) 홍순애(차화연)의 황혼 로맨스는 평소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중년의 사랑의 감정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상실·소외 등 부정적 느낌보다 새롭게 시작하는 중년의 솔직한 로맨스가 당당히 극의 중심이 되는 격이다.
◇중년의 새로운 생산성에 주목= "생명은 발생과 함께 시작하고 노화와 함께 끝나며, 중년은 그 두 가지가 가장 두드러지게 충돌하는 특별한 단계다." 지난해 10월 출간, 케임브리지대학교 생물학자 데이비드 베인브리지가 쓴 '중년의 발견'의 한 대목이다.
갑자기 희어진 머리카락, 흐릿해진 시력, 감퇴된 기억력. '인간으로서 생산적인 삶은 이제 끝났는가'라는 회의적인 질문이 이따금씩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원래 한자어가 지닌 의미만큼이나 무거운 '중년(重年)'의 고뇌일 수 있다. 그러나 평균 기대 수명 100세 시대, 더 이상 이 같은 질문은 생산적인 삶을 가로막는 굴레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중년이 새로운 생산성을 가진 세대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오늘날의 중년은 보수적·진보적 가치가 혼존하는 세대다. 사회적 관심도 대단히 있고, 자식에 대한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낮아 개인의 삶에 대한 고민도 많다"면서도 "중년층의 활발한 문화 소비와 맞물려 이들의 로맨스를 비롯해 앞으로 중년의 새로운 생산성과 역동성에 주목하는 콘텐츠는 더 양산될 것"이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