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수필] 장기판

鄭泰成(언론인)옛날 신문 연재만화의 한 토막이 생각난다. 의자를 만들고 보니 네 다리중 하나가 짧다. 그 짧은 다리에 맞추어 나머지 세 다리를 자르는데 다 자르고 보니 또 그중 한 다리가 짧다. 별수없이 또 긴쪽을 자른다. 마침내 의자 다리는 다잘려 나간다. 다리 없는 의자가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장기판을 만들고 만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는 길고 짧은것이 많고 세상사람 가운데엔 그 길고 짧은 세상일이 가지른하게 골라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또 많다. 또 그런 믿음은 가진 사람중엔 짧은것에 맞추어 긴쪽을 잘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길고 짧은것이 세상일에는 없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또 길고 짧은 것을 고르는 경우에도 긴쪽을 자른것이 아니라 짧은 쪽을 보족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지않다. 끝내 장기판을 만들지언정 고르지 않은 것을 용서치않고 긴쪽을 과감하게 자르는 사람이 옳은지, 세상일은 다 그런 것이라고 너시러히 받아들여 변혁을 마다하는 사람이 옳은지, 아니면 짧은 다리를 보족하여 쓰는 사람이 옳은지 택일하기는 물론 어렵다. 작년 한해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비유하자면 수년의 개혁은 길고 짧은 의자의 다리를 가지른하게 잘라 맞추어 기울어진 의자를 바로 서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짧은 쪽을 돋우고 고여서 바로 서게 하자는 것이라기 보다 긴쪽을 자르는 개혁이었다. 그래서 긴쪽을 자르면서 새로운 과부족(過不足)을 발생케한 개혁도 적지 않았다. 그로 인해 개혁을 반대하는 소리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창조적 개혁 찬미론에 파묻혀 비행기의 굉음 앞에 맞서는 모기의 날개짓과도 같았다. 세상일에 저절로 틀을 생성해 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틀을 미리 짜서 그 틀에 세상일을 맞출수 있는 것인지는 잘 알수 없다. 설사 사람의 머리로 세상일을 가둘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 무수하게 만들어지고있는 틀들이 세상일을 다 교정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견고한지도 분명치않다. 개혁은 곧 새것이다. 사람도 제도도 낡은 것은 모조리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곧 개혁이다. 작년 한해동안 낡은 것은 버릴만큼 많이 버렸다. 그래서 덕담삼아 한마디한다면 새해엔 부수고 버리는 일보다 짧은 것을 돋우고 헌것을 고쳐 쓰는데 주력하는것이 어떨가, 장기판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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