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대한민국, 새로운 도전의 시대] (2부-4) 금융

美진출 확대…선진금융 배울 '호기'




“국내 금융회사의 경쟁상대는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사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 어느 연설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FTA 협상에서 금융 부문은 부정적인 측면보다 장기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력과 감독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앞으로 개방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순간의 방심으로 ‘안방’시장을 내주는 것은 물론 ‘글로벌 플레이어’로의 도약이 늦어지는 실책을 범할 우려도 상존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따라서 은행을 비롯한 국내 금융사들이 미국 본토에서도 경쟁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해 국내 은행들이 해외 시장에 신설할 점포 수는 모두 39개. 대부분 동남아 시장에 집중돼 있지만 이중 서너개는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타결은 우선 국내 금융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규제가 투명해져 우리나라 금융사들의 미국 영업에 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들의 영업 관련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정기적인 협의 채널을 마련하기로 한 점도 주목된다. 하준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FTA로 양국 금융감독 당국간의 전반적인 신뢰도가 높아지고 협의 채널이 구축됨에 따라 국내 금융사들의 미국 진출에 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가시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국내 은행 대부분이 현지법인이나 지점을 두고 있는 미국 뉴욕주의 자산유지 의무비율이 폐지됐기 때문. 황록 우리은행 국제팀 부장은 “자금조달은 물론 운용에서도 다양한 대출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탄력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FTA로 국내 금융사, 특히 은행ㆍ증권사 등은 분명히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된다. 바로 신금융 서비스 부문이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과 맞물려 첨단기법을 도입한 신금융상품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면 시장잠식 등에 대한 우려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신금융상품은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도입되기 때문에 포괄주의(negative system)를 채택한 자통법이 시행되면 혁신적인 금융상품들이 대거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변영한 금감위 국제협력과장은 “이번 협상으로 금융감독 규제의 투명성이 한층 높아지고 외국인투자가 보호가 확대되면서 투자여건이 좋아져 외국자본이 국내로 진출하는 유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국내 금융기관들이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국내 은행들의 경쟁력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장기적 성장동력을 찾기보다는 신용도가 높은 개인ㆍ우량기업에 대한 예금과 대출 업무에 치중하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행태를 보여왔다. 주택담보대출 쏠림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영지표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미국 은행들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총이익에서 비이자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난 2005년 기준으로 미국은 42.8%인 반면 한국은 12.6%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면 국내 은행들은 예대마진이라는 단순노동을 통해 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앞으로 금융 전문인력을 얼마나 양성해 선진국 수준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렸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권 종사자 중 소위 전문가로 분류할 수 있는 인력의 비중은 전체의 8.9%에 불과하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각각 43.8%, 51.3%로 나타났다. 박석민 산은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금융의 국제화ㆍ증권화 추세를 이끌 수 있는 고급 전문인력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전문인력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이 ‘인적 기반’의 산업임을 강조해왔으면서도 이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해온 결과이다. 하 연구위원은 "향후 우리 금융산업에서 제도 선진화에 맞는 인력 전문화가 가장 절실한 과제로 대두할 것"이라며 "미국 진출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june@sed.co.kr 보험시장 지각변동 예고 2010년 어느 날 자동차부품을 미국 시장에 주로 수출하는 국내의 한 중소기업은 미국 내 보험중개업자의 e메일을 받았다. 운송보험 계약을 자신에게 주면 20%가량 싼 보험료로 미국 내 전문 보험사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업 재무담당자는 인터넷으로 e메일을 보낸 보험중개업자의 신용도 등을 검토한 후 운송보험 계약을 이곳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실현 가능한 보험시장의 변화를 예상해본 것이다. 이번 FTA 협상 결과 국내 보험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FTA 이전부터 미국 등 선진국 보험사에 빠른 속도로 잠식됐던 보험시장이 향후 어떤 구도로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 국내 생보사들은 상장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올해에서야 간신히 털어버렸다.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상장을 통해 자본력을 키우고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FTA 발효 후 미국 내 보험중개 업자가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보험상품을 판매하게 된다. 비록 고객을 직접 만나 모집하는 '대면' 방식은 불허됐지만 진출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던 해외 중개업자들의 국내 시장 진입이 허용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태열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 실장은 "우리보다 경쟁력이 월등한 해외 중개업자들의 국내 시장 영업이 공식적으로 허용됐다는 점에서 향후 시장의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보험업계의 취약점인 계리ㆍ손해사정ㆍ위험평가 등 보험 부수 서비스는 대면 방식을 통한 국경간 거래도 허용됐다. 이는 보험 소비자 보호와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 강화라는 과제를 남겼다. 보험중개업자들이 국내에서 모집한 보험계약은 감독권 밖에 있는 보험사업자에 넘어가게 된다. 감독 측면에서 보완대책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중개업의 국경간 거래가 중소기업 등 보험계약자의 권익보호 필요성을 요구한다"며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체국보험과 농ㆍ수협, 신협, 새마을공제 등 유사보험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예고돼 있다. 유사보험사에 대한 정부 특혜를 없애라는 미국 측의 강력한 요구는 일단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을 강화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유사보험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체국보험의 경우 상품 부문에 대한 감독 당국의 감독수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영업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감독강화로 유사보험들이 실제 시장의 일부를 잃게 된다면 이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국내 보험사들도 유사보험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직접감독을 반기고 있지만 최근 수년 동안 시장을 확대해온 것은 외국계 보험사들뿐이다. 지난해 말 현재 외국계 생보사들의 시장점유율 20%는 5년 전의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국내 생명보험 시장은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7위를 자랑하고 있지만 국내 생보사들의 총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265조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보험시장을 탐내는 외국계 보험그룹들은 각각 수천조의 자산과 차별화된 마케팅 능력으로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18년 동안이나 발목을 잡아왔던 생보사 상장의 실마리가 이제야 풀렸지만 아직 갈길은 멀어 보인다. 금융감독 당국의 지나친 규제와 보호장벽에 안주하려는 보험사들의 습성은 여전하다. 따라서 한미 FTA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 보험시장에 주는 충격파는 제한적이겠지만 이를 계기로 보험업계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 이번 금융 부문 협상에서 왜 보험산업이 끝까지 쟁점이 됐는지 또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국내 보험업계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며 "이는 언제나 한국 시장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초대형 보험그룹들의 목적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