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위기의 저주가 7년여가 지난 지금도 현지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생들을 괴롭히며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사회에 진출한 '저주받은 09~15졸업학번'이 향후 10~15년간 '저임금 고용불안'의 굴레에 갇히게 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8일 미국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는 '2015 졸업생(The class of 2015)'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경기침체는 지난 2009년 6월 종료됐으나 장기간 수백만명이 실직상태로 남겨졌으며 신규 졸업생들과 같은 신입 노동자들은 특히 불안한 상태"라며 "젊은 졸업생들의 실업률과 불완전고용률은 개선되고 있으나 경기침체 전보다 여전히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미국 신규 대졸자 실업률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금융위기 직전 연도인 2007년 5.5%였으나 현재는 7.2%이며 불완전고용률(시간제근로자 및 비정규직)도 같은 기간 9.6%에서 14.9%로 증가했다. 신규 고졸자 역시 이 기간 실업률이 15.9%에서 19.5%로 올랐고 불완전고용률은 26.8%에서 37.0%로 뛰었다. 또 일을 하지도, 추가로 취학하지도 않는 비중이 신규 대졸자는 8.4%에서 10.5%로, 고졸자는 13.7%에서 16.3%로 각각 늘었다. 고용불안은 인종별로도 정도가 달랐다.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실업률이 백인 실업률보다 현저히 높았다는 게 EPI의 분석이다.
경기가 점진적으로나마 회복되고 있다고 하나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조정한 실질임금 수준은 오히려 16년 전에도 못 미치고 있다. 2000년에 비해 현재 신규 고졸자 실질임금은 5.5%, 신규 대졸자 실질임금은 2.5%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 중에서도 여성 졸업생들의 시간당 임금은 상대적으로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EPI는 소개했다.
문제는 이들 세대의 고용불안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EPI는 정부 및 비영리 대학교육정보기관 칼리지보드 등의 자료를 근거로 들며 "2015년 졸업생들은 향후 10~15년간 일자리가 많은 시기에 졸업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소득을 올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된 이유는 일자리 감소로 졸업생들이 바텐더나 음식점 종업원처럼 자신의 학력·능력·경력 수준에 못 미치는 저임금 직종에 취업하는 경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굳이 대졸 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 취업한 27세 이하 대졸자의 비율은 2007년 38%였으나 2014년에는 46%까지 늘었다.
더구나 이처럼 첫 직장의 임금 및 경력 수준이 낮으면 이후 고임금·고경력의 직장으로 이직할 확률도 경기불황 때문에 점점 더 희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에는 대졸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일자리를 구한 대졸자라도 그 중 절반가량은 전기기사·기술자·치과위생사 같은 고임금의 경력직으로 옮겼으나 근래 들어서는 그 비중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게 EPI의 설명이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사정을 "과잉학력을 지닌 바리스타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저명한 영국 배우 데릭 톰슨의 대사에 비유하면서 대졸자들이 경력을 쌓아야 할 중요한 순간에 이처럼 저임금의 저숙련 일자리를 선택하면 자신을 경력 상승 사다리의 밑바닥으로 이끄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엘리제 굴드 EPI 박사의 견해를 전했다.
저주받은 졸업학번의 불운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고등교육 학비 상승세가 중산층 가정의 소득 증가세를 훨씬 앞질러 대학생들을 학자금 대출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EPI는 1983~1984년 학기부터 2013~2014학기 사이에 4년제 대학 학비(물가상승률 반영 조정치)는 사립 125.7%, 공립이 129.0% 올랐으며 2014년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 수는 10년 전보다 92%나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제 해결을 위한 고용·복지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EPI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