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다시 기업이다-신 기업가정신을 키우자] <상> '코리아 엑소더스' 부추기는 규제

말로만 "규제완화"… '도전 DNA' 깨울 기업환경 만들어야

환경·노동법 등 늘어나는 족쇄에 "차라리 해외로"

청년도 실패 두려워 창업보다 안전한 일자리 원해

정부 투자 나설 정책 비전 세우고 대못 확 뽑아야


신수종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이후 넥서스·뉴로로지카 등 12건의 해외 인수합병(M&A)을 단행했지만 올해 실적은 '제로(0)'다. 반면 경쟁업체인 구글과 애플은 올 상반기에 40여개 업체를 인수했다. 또 중국은 지난해 1,841억달러(약 187조원)에 이르는 거래를 성사시켰는데 한국은 414억달러(42조원)에 불과했다. 신성장동력 확보에 목마른 국내 기업들이 M&A나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국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탓이 크지만 다른 장애물도 있다. 대기업을 옥죄는 규제다.

지주회사법상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기업들로서는 인수에 따른 재정부담이 크다. 모회사의 주식이나 현금을 투입해 자회사가 벤처기업을 합병하는 기존의 '삼각합병'과 달리 사려는 벤처기업이 자회사를 합병하는 역삼각합병도 하지 못한다. 역삼각합병은 벤처기업이 보유한 독점사업권이나 상표권 등 각종 권리를 양도할 필요가 없어 합병이 쉽다. 이에 따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3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벤처기업 M&A 활성화를 위한 5대 정책과제'를 정부에 건의했지만 아직도 변한 게 없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순환출자 금지와 지주회사법상 지분율 규제 등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M&A에 적극 나서지 못하면서 미래 먹거리 발굴에 애로를 겪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부 유보금에까지 세금을 매기면 투자 의욕 위축은 물론 기업가정신마저 퇴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말라가는 기업가정신…청년 창업도 부진=과거 창업세대들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일정 부분 정부 지원도 받았지만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도전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국부를 창출했다. 삼성·현대차·SK·LG·포스코 등 우량 기업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창업 1세대의 이 같은 투지는 2세대로 이어져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라서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신생 대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을 기업가정신의 퇴조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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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의 퇴조는 여러 부분에서 확인된다. 국내 창업의 활력 정도를 나타내는 기업신생률(가동사업자 대비 신규 사업자 비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1년 28.9%이던 기업신생률은 2011년 20.2%로 하락했다. 특히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우수 인재들이 창업에 과감하게 도전해야 하지만 청년 최고경영자(CEO)의 비중이 2000년대 초반 32.4%에서 최근 11.6%로 3분의1 토막 났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기업들은 갈수록 높아지는 리스크에 비해 성과를 실현할 수 있는 생태적 환경이 부족하다 보니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청년들마저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만 찾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구호에 그친 정책 비전 악화 초래=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업가정신의 퇴조 현상이 과도한 규제와 반기업정서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필요하지만 각종 규제로 발목이 잡힌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역대 정부가 한목소리로 규제완화를 외쳤지만 규제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09년 1만1,521건이던 규제는 지난해 1만5,282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서도 45건의 규제가 더 늘었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2004년 89억9,000만달러에서 지난해 353억8,000만달러로 294%의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임금 및 물류비용 절감을 통한 원가경쟁력 확보 차원이 강하지만 근로시간 단축, 정리해고 요건 강화, 사내 하도급 사용 규제, 정년 연장, 통상임금 등 노동규제에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국민들의 반기업정서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것도 국내 기업의 '코리아 엑소더스'를 부추기고 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떨어지고 노동유연성도 없는 상황에서 각종 규제에 시달리다 보니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새로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규제 시스템을 혁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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