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은 중국 입장에서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아시아태평양의 꿈'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이라는 경제블록을 형성해 중국을 에워싸는 상황을 타개하고 나아가 중국 중심의 경제블록 형성이라는 역전도 기대할 수 있는 단초가 바로 한중 FTA라는 것이다. 지난 7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 중국의 양보가 뒤따르는 '연내타결'이라는 강수를 던진 것도 이 같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라는 이벤트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개최국 프리미엄을 기반으로 한국과의 협상에 막판 피치를 올렸다. 아직 추가 협상 단계가 남았지만 중국은 지역 역학구조의 주도권을 위해 당장 경제적 이익의 수준을 낮췄다. 하지만 중국이 목표로 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통합이 이뤄진다면 이는 중국이 거둘 미래 이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중 FTA, 중국의 정치적 선택=중국 정부에 한중 FTA는 경제적 이익보다는 정치적 이익이 우선하는 협상이었다. 동북아 지역구도에서 한국과의 관계강화는 중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국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한중 FTA는 중국이 한국에 대해 경제는 물론 군사ㆍ외교적 측면에서 전략적 균형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등에 대한 반대 의견을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할 가능성이 높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중국은 TPP로 인해 배제됐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한중 FTA로 회복했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중국 중심의 경제블록 형성 추진이 다음 수순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에 대한 압박도 한층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미 한중 FTA를 시작으로 한중일 FTA로 나가야 한다고 언급한 만큼 중일관계 개선과 함께 한중일 FTA의 협상 개시로 미국을 견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FTAAP 추진력 얻어=중국의 최종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통합이다. APEC 회의에서 당초 목표한 것보다 한 단계 낮은 성과를 얻긴 했지만 FTAAP는 로드맵 마련으로 닻을 올렸다. 2016년까지 로드맵의 결과물을 도출한 후 중국은 바로 협상 개시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TPP를 기반으로 FTAAP의 발목을 잡고 있긴 하지만 중국이 양자 FTA와 지역통합체와의 FTA를 계속 추진한다면 FTAAP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왕융 베이징대 국제정치경제연구소장은 "한중 FTA 이후 목표는 한중일 FTA가 될 것이고 이는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과 연계되며 자연스럽게 FTAAP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며 "결국 미국과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경제통합을 두고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객관적인 환경이 중국이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TPP에 일본과 캐나다가 참여하며 농산물과 관련해 미국과 입장 차로 협상이 늦어지고 있는 데 반해 RCEP는 2015년을 목표로 차근차근 진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실크로드기금 등의 차이나머니도 RCEP에 힘을 실어준다.
◇중국, 글로벌 FTA 가속도=한중 FTA 타결은 중국 입장에서 경제력이 우위에 있는 국가와 FTA 협상에 대한 자신감과 경험을 선사했다. 현재 중국은 총 9건의 FTA를 체결하며 17개국과 FTA를 발효했거나 발효 예정이다. 하지만 양자 간 FTA는 칠레·파키스탄·뉴질랜드·페루·싱가포르·스위스·아이슬란드·코스타리카 등 8개 국가에 불과하다. 나머지 9개 국가는 아세안으로 묶여 양자 FTA 성격보다는 지역경제통합체와의 다소 느슨한 협정이다. 중국 입장에서 한중 FTA는 주요 무역대상 국가, 특히 공산품 수입국가와의 FTA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 일본·EU 등은 물론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도 한중 FTA는 중국 양자 FTA의 기본 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달 중순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호주와의 FTA를 체결할 예정이다. 또 걸프협력이사회(GCC), 노르웨이, 남아프리카관세동맹(SACU) 등과도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