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당장은 정의구현 안돼도 꼭 복수할 필요는 없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출판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소설의 초고는 2004년 완성됐었다. 작가는 중국 연길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해 결실을 얻었다. 작가가 귀국한 뒤 사람들은 물었다. “신작은 언제 출판되죠?” 작가는 초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 출판을 미뤘다. 시간이 흐른 뒤 결말을 손봤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철학을 담아냈다. 그러고 나니 더더욱 출판할 수가 없었다. 소설은 피의 앙갚음으로 얼룩져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던 현장에서 작가는 소설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깃발을 들고 전경과 맞서던 남총련 학생들. 잠시나마 그에게 1980년대 시위의 향수를 불러왔지만 세월은 변했고 문화는 달라졌다. 구호를 외치며 투쟁하리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학생들은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가 사는 2008년은 분명 1987년과는 다른 시대이며 새로운 세계였다. 귀가한 작가는 소설을 뜯어고쳤다. 내용은 이렇다. 1930년대 중국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주인공 해연은 연인이자 독립군 조직책인 정희를 잃는다. 해연은 일본영사관에서 비열한 조선인 경찰보조원 도식에게 추궁을 당했으나 혐의가 없어 풀려난다. 아편쟁이가 되는 등 한때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그는 다시 혁명조직으로 돌아온다. 혁명조직은 그의 이데올로기를 송두리째 흔든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조선혁명을 위해 우선 중국 혁명부터 해야 한다는 국제주의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중국 혁명을 위해 죽어가는 모순된 현실에 조선 혁명가들은 반발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친일파로 몰아세우며 무자비한 탄압을 가한다. 1930년대 중반 발생한 이른바 민생단 숙청 사건이다. 혼돈 속에 해연은 조국에 칼을 겨눈 매국노 도식을 찾아 나선다. 운명적으로 도식을 다시 만난다. 복수심은 도식의 자녀들 앞에서 무너진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하면서 아이들에게 소중한 아버지를 뺏어서는 안 된다고 내면의 목소리가 말하고 있었다. 작가는 악인을 응징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주인공이 복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

관련기사



강동효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