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1일] <1392> 샬트세바덴모임

유가를 예측하거나 움직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성공하면 천문학적인 차익을 누릴 수 있지만 수많은 거래 당사자의 이해가 걸렸기에 그렇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지구촌 경제를 경색시킨 제1차 석유위기가 사전에 치밀하게 꾸며진 것이라는 음모론만큼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의혹의 시발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롬 인근 항구도시 샬트세바덴에서 1973년 5월11일 열린 빌더버그클럽 연례회의. 민간 차원의 국제 친목모임이라는 설명과 달리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조직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이 클럽은 삼엄한 경비 속에 진행된 샬트세바덴 회의에서 국제유가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훗날 공개된 비밀회의록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배럴당 3.5달러인 국제유가를 배럴당 10~12달러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대로 연말에 유가는 11.65달러로 뛰었다. 샬트세바덴의 음모설이 사실이라면 이집트군의 기습에 따른 4차 중동전쟁 개전과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민족주의조차 이들이 치밀하게 엮은 각본에 불과하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알 수 없지만 세계가 고유가로 고통 받을 당시에도 이익을 향유하는 집단이 존재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석유 메이저가 그랬고 아랍권의 석유판매 자금을 예치한 거대 금융자본이 그랬다. 위험천만한 북해의 해저유전에 수십억달러를 쏟아 부은 미국과 영국의 석유자본도 유가폭등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금태환 정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1971년)로 흔들리던 달러의 지위가 샬트세바덴 모임이 기획한 석유본위제도로 다시금 공고해졌다는 해석도 최근 나왔다. 폭리가 있었다면 피해자가 있기 마련. 빈국과 부국의 격차가 이때부터 더욱 벌어졌다. 원유수입 부담 증가로 외채급증에 시달린 제3세계는 줄줄이 부도사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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