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김인영 특파원】 연초 엔화가 초강세 행진을 지속할 때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강한 달러」 정책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번주 들어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자 그는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도 불구, 지론인 강한 달러론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일본 고위관리들이 잇달아 엔화 약세 용인론을 펼치는 마당에 자신마저 맞장구치면 엔-달러 시장이 급격히 요동칠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재무부나 뉴욕 월가의 외환 전문가들은 연초의 엔화 강세가 미-일 양국의 펀더멘털 격차를 무시한 것이며, 엔화가 고평가됐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일본이 유로화 출범을 의식, 엔화 강세를 인위적으로 유도했으며, 지난해 4%대의 성장을 이룩한 미국과 마이너스 성장을 한 일본의 경제력을 비교할 때 엔고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엔화 약세를 사전에 양해했는가 하는 점이다. 루빈 장관은 최근 『일본이 내수 진작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야 한다』면서 애매한 표현을 썼다.
그가 말한 「내수진작을 위한 수단」이 무엇인지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지만,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 팽창정책을 의미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의 연이은 보도가 미국의 엔화 약세 동조론을 뒷바침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이 엔화를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고, 물가 상승은 개인 소비와 기업 투자를 촉진하며, 이에 따라 내수 경기가 살아나 경제가 회복된다는 논리다. 또 엔화 발행량이 늘어나면 엔화 약세를 유발해 수출이 촉진된다. 이 논리는 지난해말 폴 크루그먼 MIT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에게 세금을 더 걷고, 적자 재정을 시행함으로써 금융기관의 부실 여신을 정리하고 내수를 진작시키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전망이 농후해짐에 따라 재정 정책만으로는 치유가 어렵고 차선의 수단인 통화 팽창도 인정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미 재무부는 이런 입장을 언론에 흘리지만, 공식적인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통화팽창으로 살아나면 아시아 경제에 도움이 되겠지만, 역으로 엔 약세로 한국의 원화가 동반 하락하고 마지막 보루인 중국 위안화마저 절하되는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 안정의 절대적 관건임을 강조하지만, 방법론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