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개인정보 수집 파문… 미-EU FTA 발목잡나

전 CIA 직원 폭로에 EU 정보보호기준 강화 요구<br>유전자조작농산물·문화산업 이어 교섭 쟁점 부상

미국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들이 무차별로 민간인의 전화통화나 개인정보를 수집해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파장이 국제 문제로 번지고 있다. 특히 미국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도 뜻밖의 암초를 만나 협상이 좌초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미 정보기관들의 개인정보 수집 파문이 미ㆍEU FTA 협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FT는 "유럽의회 내에서 미ㆍEU 간 협상 때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기준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며 "잠재적으로 협상 타결을 좌절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ㆍEU FTA가 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 문화산업 보호 문제에 이어 또 다른 암초를 만남 셈이다.

EU는 지난해 개인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기업의 정보보호 책임자 고용 의무화 ▦개인정보 유출 때 24시간 이내 신고 ▦온라인상 개인정보 삭제요구 가능 ▦위반시 최대 매출의 2%까지 벌금 부과 등 규제당국이 기업들을 강력히 제재할 수 있는 법안을 유럽의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미국 정보기술(IT)ㆍ금융업계가 법안을 완화하라며 자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지만 이번 파문으로 법안이 원안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 내 좌파모임을 이끄는 한스 스보보다 의원은 "미국 정부가 얼마나 쉽게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는지 증명됐다"며 "EU의 정보보호 기준이 FTA 협상에서 존중되지 못한다면 유럽의회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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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보호에 엄격한 유럽 내에서는 이미 미국 정보당국의 행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 독일 야당인 사회민주당(SPD) 소속 토마스 오페르만 의원은 "미국의 테러리스트 감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미국이 독일 시민을 감시하는 일은 부적절하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영국의 경우 감청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 요원들이 미국 정부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해명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제프 체스터 미국 디지털민주주의센터장도 "이번 파문은 미국 정부에 큰 정치적 상처를 입혔다"며 향후 FTA 교섭과정에서 난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이번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인물은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사진)으로 밝혀졌다. 그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국가기밀의 언론유출과 관련해 법무부에 수사를 의뢰한 것을 정면 비판하면서 이들 언론사에 신원공개를 자청했다.

스노든은 이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가디언ㆍ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만든 대규모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생활과 기본적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희생도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컨설팅 업체 '부즈앨런해밀턴' 직원으로 현재 홍콩에서 체류하고 있다. AP통신은 스노든이 전역한 뒤 NSA에서 일했고 지난 2007년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CIA 정보기술 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2001년 9ㆍ11테러 이후 제정돼 정보기관의 과도한 정보수집의 근거가 된 '애국법(Patriot Act)'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인 마크 우달 민주당 의원은 이날 ABC방송에 출연해 "애국법을 손질해 NSA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 범위를 제한해야 할 것"이라며 "테러 대비 국가안보와 시민의 기본권 간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반시민은 이런 감시 프로그램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게 큰 문제"라고 덧붙여 지적했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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