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두산家, 109년짜리 브랜드

김형기 <산업부장>

‘두산가(家)’는 그 자체가 109년된 브랜드다. 좋은 느낌으로는 ‘한국형 가족경영의 대표기업’, 나쁜 느낌으로는 ‘페놀사태의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지난 1896년 박승직씨가 ‘박승직상점’을 열면서 시작해 고 박두병 회장, 박용곤 명예회장, 박용오 전 회장 및 현재의 박용성 회장에 이르기까지 부자 또는 형제로 계승되며 벌써 3대째 ‘가업’을 ‘기업’으로 발전시켰으며, 또 ‘기업’을 ‘그룹’으로 키웠다.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거나 자손이 2대ㆍ3대로 넘어가면서 분화되고 있는 국내 재벌가에서는 좀처럼 찾기 쉽지 않은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이 두산가 브랜드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가문 브랜드, 위기에 처해

이 기간 동안 91년에 발생한 ‘낙동강 페놀 무단방류 사태’를 제외한다면 두산가는 한국의 기업역사에서 상당히 바람직한 모델을 만들어가던 명망가다. 이 때문에 ‘두산 또는 두산가’하면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 가족경영의 성공 사례, 나아가 ‘한국형 오너 경영의 참고서’라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든다. 21일부터 세상에 불거져나온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 박용만 부회장 간의 형제 갈등은 이 같은 두산가의 브랜드 이미지가 정상궤도를 이탈했다는 것을 뜻한다. 형제간 우애를 자랑해오던 집안의 한쪽은 이제 검찰에 “다른 쪽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고발하고 있으며 상대방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그쪽을 집안에서 퇴출한다”며 저잣거리식 막싸움을 펼치고 있다. 이미 집안의 명예는 염두에서 사라졌으며 그룹의 이미지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모습이다. 덕분에 2만여명이 넘는 두산맨들은 수장 집안의 내부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예측조차 하지 못한 채 불안해 한다. 두산가 브랜드는 지난 100여년 동안 이번보다 더 큰 위기를 치렀다. 15년 전인 91년 계열사인 두산전자가 전자부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페놀을 낙동강에 무단방류했던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온 국민으로부터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꼽혀 난타를 당했다. 심지어 ‘두산상품 불매운동’까지 전개될 정도로 ‘국민의 적’으로 취급당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 맥주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두산의 OB맥주는 ‘깨끗한 물’을 강조한 하이트맥주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급락했으며 그룹을 이끌어가던 박용곤 명예회장도 일선에서 퇴진해야 했다. 뒤 이어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스스로 단행해야 했었다. 결과론이지만 페놀사태는 두산에 혹한의 IMF 시기를 남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예방주사가 됐다. 생존위기 속에서 그룹의 주력이었던 음료사업마저 코카콜라에 양도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여기서 비축한 힘이 최근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같은 중후장대한 기업을 인수하는 에너지로 작동했다. 페놀사태 교훈 되새겨야

검찰은 박 회장의 비자금 문제 등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제 두산가는 더 이상 ‘한국형 오너경영의 참고서’ 자격을 지니기가 어려워졌다. 검찰의 조사결과 비자금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부도덕한 집안’으로, 그렇지 않다면 ‘얼빠진 집안’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금 ‘검찰의 도마’ 위에 오른 두산가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악착같이 감추려던 것들이 하나둘씩 세상에 공개될 때 추문이 발생한다. 안팎이 꽉 막혀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면 가장 쉬운 선택은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족경영’ 109년의 두산은 이제 ‘시스템 경영’으로 전환할 때인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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