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완전 정상가동까지 일주일가량 걸려<br>입주업체 2·3차 피해 합치면 수천억 이를듯
| 지난 3일 정전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여수산업단지의 한 입주업체가 공정에 남은 원재료를 뽑아내 불태우고 있다. /여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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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산단 정전피해 1,000억 넘을듯] 2년만에 또… "송전선로 복선화 시급"
공장 완전 정상가동까진 일주일가량 걸려한전-업체, 벌써부터 책임 떠넘기기 급급
맹준호 기자 next@sed.co.kr
지난 3일 정전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여수산업단지의 한 입주업체가 공정에 남은 원재료를 뽑아내 불태우고 있다. /여수=연합뉴스
"가정용도 아니고 국가산업단지 전력공급이 이 모양이니…."
4일 오후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한 업체 관계자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였다. 명색이 국가산업단지에 정전이 발생해 이틀째 가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수산단은 국가산업시스템의 뼈대인 에너지ㆍ화학업종의 생산시설이 집약돼 국가보안등급 '가' 시설로 분류되는 곳이다. 정유 및 유화업종의 경우 단 1초만 전력공급이 중단돼도 곧장 수백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하고 복구가 늦어질 경우 국가 전체의 에너지ㆍ화학제품 수급은 물론 관련 후방산업으로 피해가 확산된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06년에 이어 2년 만에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며 "국가기간산업인 에너지ㆍ화학 업체들이 안정적으로 생산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전력공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 규모 눈덩이=3일 사고 당시 여천NCCㆍ한화석유화학ㆍ대림산업ㆍ폴리미래 등을 비롯한 여수산단 입주업체들은 갑작스럽게 전압이 낮아지자 즉각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안전 확보를 위해 공정 내에 남아 있던 원재료 및 중간제품을 강제로 배출ㆍ연소시켰다.
한화석화의 한 관계자는 "떡 방앗간으로 치자면 기계를 멈춘 뒤 말랑말랑한 떡이 굳어버리기 전에 모두 기계에서 빼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3일에는 여수산단 내 대부분 공장이 꺼졌고 지금은 재가동을 위한 단계를 밟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4일 오후 들어 일부 업체들이 부분적으로 공장을 다시 가동하고는 있지만 석유화학 공정의 특성상 공정에 투입된 원료를 빼내고 시설 보수를 거쳐 공장을 완전 정상 가동하기까지는 일주일가량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전사고에 따른 여수 유화업체들의 피해액만 1,0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번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여천NCC의 경우 가동중단 피해액이 600억원에 달한다고 한국산업단지공단 여수지사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천NCC의 한 관계자는 "강제로 태워버린 원재료 및 중간제품만 집계해도 170억원의 매출손실이 났다"면서 "더 큰 문제는 재가동을 성급하게 할 경우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공정을 100% 가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추가로 든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위 공정에 해당하는 유화업체의 생산차질이 하위 공정 업체의 생산차질 및 납기 지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업계는 하위 공정 업체들의 피해까지 합치면 전체 손실규모는 1,0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GS칼텍스의 한 관계자는 "촉매분해방식 중질유분해시설(RFCC)에 문제가 발생했으나 곧바로 복구에 성공했다"면서 "자칫 경질유종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송전선로 복선화가 가장 시급=업계에서는 피해 규모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사고의 명확한 원인을 규명해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벌써부터 한전과 업체 간에 책임 공방이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전 측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피뢰기는 교체주기가 15년이지만 한화석유화학 공장은 30년 동안 교체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화석유화학은 "문제의 피뢰기가 설치된 지 28년 된 제품이지만 통상적으로 내구연한이 정해져 있지 않고 업계에서도 보통 30∼40년가량 사용한다"고 반박했다. 2006년 정전사고 때도 명확한 책임규명이 이뤄지지 못하고 한전과 업체 간에 책임 공방을 벌인 적이 있다.
GS칼텍스의 한 관계자는 "이런 사고의 경우 명확한 책임소재 규명이 쉽지 않다"면서 "다각적인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전력공급 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는 송전선로의 복선화가 거론된다.
현재 포스코의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제외한 국가산단 내 에너지ㆍ화학 업체의 경우 대부분 송전선로 한 개에 의존하고 있어 사고가 날 경우 산단 전체의 전기공급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여수산단의 입주업체들은 송전선로의 복선화를 희망해왔다.
문제는 돈이다. 복선화 작업은 개별 업체가 막대한 자금을 스스로 투입해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GS칼텍스를 제외한 업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국가산업단지인 만큼 개별 기업에만 맡겨놓지 말고 국가가 나서 전력공급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험 등 위험회피 장치와 보상시스템에 대한 체계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