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사진) SK 회장의 '분사를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역발상 경영이 주목을 끌고 있다. 국내 정유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각 사업 부문을 분사시킨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분사를 통해 각 사업 부문에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로 거듭난 SK종합화학과 SK루브리컨츠가 급성장하면서 산업계에서 최 회장의 역발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기존 기업들이 사업부의 통합과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상황에서 최 회장은 분사로 SK 계열사들의 몸집을 가볍게 하면서 속도를 높이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분사된 기업들이 나란히 고속성장을 실현함으로써 최 회장의 '분할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역발상 전략은 옳은 선택이었음이 입증된 셈이 됐다.
1일 SK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한 해 동안 매출 68조3,754억원과 영업이익 2조8,488억원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7%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50%나 늘어난 수치다.
특히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된 SK종합화학과 SK루브리컨츠의 성장세는 더욱 눈부시다. 지난 2009년 10월 윤활유 사업 부문 분할을 통해 새롭게 출범한 SK루브리컨츠는 당시 1조3,216억원이던 매출이 다음해인 2010년 2조원을 넘긴 데 이어 지난해 또다시 30% 넘게 성장한 2조7,134억원을 기록했다. 또 지난해 초 석유화학 부문을 분할해 만든 SK종합화학은 2011년 매출이 전년 대비 34% 증가한 15조551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133%나 늘어난 7,74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분사 이후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기존 석유사업에 편중돼 있던 이익구조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과거 비주력 계열이던 석유화학 부문과 윤활유 부문은 각각 SK종합화학과 SK루브리컨츠로 분사된 후 SK이노베이션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이러한 변화에는 각 사업 부문이 본원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독자경영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최 회장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됐다. 과거 하나의 기업으로 운영될 때만 해도 석유 사업이 불황이면 화학이나 윤활유 사업에서 수익을 내면 된다는 안일한 인식이 있었지만 각 사업 부문이 독립 법인형태로 전환돼 각자의 살길을 찾다 보면 저마다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SK종합화학이 일본 JX에너지와 손잡고 울산에 파라자일렌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나 SK루브리컨츠가 추진 중인 스페인 윤활기유 공장 합작 투자 등도 분사 이후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글로벌 사업환경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분석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SK의 한 관계자는 "하나의 기업으로 있을 때는 아무래도 다른 사업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과 함께 이사회 상정 절차 등 의사결정이 더뎠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분사 이후 각 회사마다 빠른 의사결정과 사업별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ㆍ공격적 투자가 이뤄지며 매출과 영업이익은 늘고 차입금과 부채비율은 줄면서 재무구조가 튼튼해졌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역발상 경영은 동종업계에도 영향을 끼쳐 올 1월 ㈜GS는 물적분할을 통해 에너지전문 자회사인 GS에너지를 출범시켰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에도 독자경영체제를 가속화해 지난해보다 14% 늘어난 78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