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조조의 용인술서 인재경영 지혜를 얻다

■ 조조의 용병술 (장야신 지음, 스마트북 펴냄)<br>정치·군사서 문학·예술까지<br>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기용<br>소통과 감동의 리더십 조명


전해지는 조조의 초상화.

조조(曹操ㆍ155~220) 만큼이나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잔인하고 교활한 '간웅(奸雄)'이라는 분석부터 정치적 이상을 시(詩)로 표현할 정도의 문학 애호가이면서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영웅이라는 칭송까지 다양하다.

중국 고전문학자인 저자는 조조의 간사함을 전면에 내세워 폄하하는 시각에 대해 "걸출한 한 위인이 살아 낸 격변의 시대에서 지엽적인 모습만을 쥐고서 확인하려는 것일 뿐"이라며 신간 '조조의 용병술'을 통해 전투 별로 드러난 조조의 용병술과 사람을 다룬 용인술, 지략 등을 다루고 있다. 책은 특히 오늘날 현대인이 객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졌다.


조조가 동시대의 다른 경쟁자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은 '권력과 돈의 맛에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데 저자는 주목했다. 중앙 정권이 무너졌기에 권력에 맛을 본 인물들은 독립된 왕국을 세워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쾌락을 만끽하던 시절이었지만 조조는 대의와 자신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 조조는 "속으로는 한 나라의 황제가 되어 나라를 통치하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으나 나라의 안정을 우선시" 했다. 거듭된 전란으로 먹거리가 바닥나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조조는 농민들이 스스로 살길을 마련할 수 있는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하게 해 농경지를 개간하면서 식량난과 군량미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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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특출한 지략으로 권력 획득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동시에 패전에서도 실(失) 뿐만 아니라 득(得)을 책겼다. 건안 2년(197년)에 반란 토벌을 맡았던 조조는 패한 전쟁터에서 전사자들을 위한 성대한 제를 올리고 비통한 눈물을 흘렸다. 그가 보인 눈물은 부하들에 대한 그리움으로써 살아남은 병사들을 감동케 했으며, 한편으로는 적군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해 군의 사기와 전투력을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당시 천하가 조조를 따랐던 이유는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용현임능(用賢任能)'으로요약해 설명할 수 있다. 나라를 부유하고 강하게 만든다는 뜻의 부국강병과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한다는 의미의 용현임능은 난세에서 태평성세로 발전할 수 있는 근본철학이었다. 특히 저자는 조조 지략의 핵심으로 재능있는 인재를 곁에 두고 진심으로 대하려는 태도를 꼽았다. 조조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았고 다른 장수 밑에서 충성한 인재도 등용했다. 자신의 재능을 과신한 나머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곧바로 실수를 인정하고 다음 계책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또한 조조는 정치력과 군사력을 갖춘 인재 만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뛰어난 인재도 등용했다. 조조와 아들들이 문인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존비귀천(尊卑貴賤) 사상 대신 평등하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으며, 조조는 전쟁터에도 문인들을 데리고 가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창작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술적 창조성을 인정하고 꽃피우게 한 조조의 다양한 노력이 그를 제왕으로 밀어올린 것이라는 얘기다.

책은 1장 천하를 평정하기까지, 2장 진취적 지략으로 세력을 굳건히 하다, 3장 획득한 세상을 지켜 내다 등 5장으로 나눠 주제별, 사건별로 조조의 활약을 보여준다. 2만2,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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