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와 중앙은행간 힘겨루기가 급기야재무장관 전격 사퇴로 이어지면서 그 파장이 이탈리아 정국은 물론 유로권으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22일 4당 연정 긴급회의를 열고 전격 사임한 도메니코 시니스칼코 재무장관 후임으로 줄리오 트레몬티 부총리를 임명했다.
트레몬티 부총리는 재무장관을 지내다 지난해 안토니오 파지오 중앙은행총재와마찰을 빚어 물러난 바 있다.
관측통들은 시니스칼코 장관이 파지오 총재를 밀어내려다 뜻을 이루지 못해 사퇴했다면서 따라서 트레몬티 신임 장관과 파지오 총재간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으로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22일 파지오 총재가 사퇴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파지오 총재는 워싱턴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연석회담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추계 연차총회에 예정대로 참석한다고 밝혀 총리 요구를 일축했다.
관측통들은 시니스칼코의 퇴진이 유로권에도 타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 이탈리아가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밑으로 줄여야하는 의무를이행하는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현재 적자가 GDP의 4% 수준이기 때문에 이를 줄여야만 한다. 그러나정부가 의회 제출을 위해 예산안을 승인해야하는 시한이 내주말인 상황에서 핵심인재무장관이 전격 교체돼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유로 운영의 `사령탑'인 유럽중앙은행(ECB) 신뢰성에 금이 갈 것이라는관측도 나온다.
유로 출범의 근간인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르면 유로권 정부는 ECB와 중앙은행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돼있다. 따라서 이탈리아 정부가 중앙은행총재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조약 위반인 것이다.
그러나 ECB는 이와 관련해 딜레마에 빠져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정부가 파지오의 사퇴를 요구해온 근거가 ECB의 중립성에 타격을 가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파지오 총재가 2건의 이탈리아 시중은행 인수.합병과 관련해 외국은행보다는 자국은행을 선호한다는 점을 내비친 통화 내용이 언론에의해 폭로됐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로 ECB의 당연직 통화정책이사인 파지오는 ECB 규정상이런 입장을 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ECB로서는 이탈리아 정부가 파지오의사퇴를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상 이런 난처한 상황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해 4월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에른스트 벨테케 총재가 사퇴한적은 있다. 그러나 벨테케의 경우 시중은행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은 `명백한 결격사유'가 있었던 케이스다. 파지오처럼 '정책상 이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검찰이 파지오가 인수.합병대상 은행장과 대화한 내용에 대한수사를 본격화할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관측통들은 내다본다.
파지오와 문제의 통화를 한 시중은행장은 이미 사퇴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파지오의 사퇴를 계속 요구하는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현재 난처한 상황이다.
집권 연정에서 그의 지도력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루스코니 체제로 내년 6월 총선을 치를 경우 야당에 패배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야당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가늠하는 측면이 강한 이번 사태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기 힘들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