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1월 18일] 성공의 함정

번영의 대명사로 칭송받던 월가의 금융산업과 일본의 전자산업이 곤경에 빠지는 모습을 지켜보면 성공의 불청객인 자만과 방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된다. 월가의 고액연봉자들은 서브프라임 주택대출채권을 유동화한 파생상품 거래가 안겨주는 막대한 이윤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이며 호시절이 영원히 계속할 것이라 믿었다. 리먼브러더스 전직 부행장이 쓴 자전적 회고록 '상식의 거대한 실패'를 보면 신용비적격자에게 묻지마 대출을 해주는 주택대부 업체와 집값 상승 기대 하나만 믿고 갚을 수도 없는 대출을 받는 서민을 보고 파생상품 거품의 위험성을 최고경영자(CEO)에게 보고했으나 묵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CEO는 호화로운 집무실에 앉아 시장 실정과는 유리된 채 눈앞의 성공에만 도취했던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소니의 컬러텔레비전은 프리미엄 가전의 상징이었고 워크맨 역시 제품 혁신기술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우리의 액정표시텔레비전과 휴대폰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일본업체들이 과거의 성공신화에 자만해 디지털혁명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성공의 함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사건이었다. 국내기업과 은행들이 국제금융 시장에서 달러를 빌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 정부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믿음에 현혹돼 위기를 보지 못했고 결국 IMF구제금융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치욕을 맞이했다. 30여년 이상의 고도성장 성공신화에 익숙한 눈에 위기의 실체가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 성공 이면에 도사리는 자만과 방심은 인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본성적 한계이므로 피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또 위기를 피하려고 너무 겸손하고 조심하다 보면 더 큰 성공을 놓칠 위험도 있다. 모기지 연동 파생상품으로 경쟁은행들이 기록적 이익을 내고 있는데 독야청청으로 방관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성공하면서도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알고 실천에 옮겨나가는 것이 긴요하다. 함정을 알려주는 조기경보 체제는 현장과 본부, 시장과 정책, 경험과 이론이 일체가 돼야만 제대로 작동한다. 리먼의 일선 투자자들이 위기의 징후를 경고했을 때 CEO가 귀 기울이고 점검했다면 파산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은행들이 외화차입 만기연장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첩보를 놓치지 않고 분석해 가치 있는 정보로 전환했다면 환란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경제학계에서는 사전에 금융위기를 포착하지 못한 데 직업적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경제이론 수정방향의 논의가 분분하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낳은 것처럼 2008년에 터진 금융위기가 제2의 일반이론을 낳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현실이 요구하는 위기경보는 너무나도 시급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등장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간된 1936년은 대공황이 발생한 지 7년이나 지난 후였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기마다 원인과 성격이 상이하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는 경제이론과 예측모형을 구축하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 현실적 처방은 기상예보 체제를 참고해 경제위기 조기경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이변들을 포착ㆍ종합해 분석함으로써 마치 쓰나미의 엄습을 사전에 경보하는 것처럼 경제위기의 도래를 예보할 수가 있다. 이 시스템에는 시장 참가자, 금융감독자, 거시정책당국자, 거시 및 미시금융이론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13년 전 외환위기를 당하고 경제를 대수술하며 체질을 강화해온 것이 이번 위기극복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빠른 회복속도에 더해 원전수주 등 낭보가 겹쳐 국운이 상승기로 접어들었다는 자심감이 확산되고 있다. 자신감이 자만으로 이어져 성공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다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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