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 검토도 안 끝났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4일 “수도권 내 공장 증설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자 관계부처가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여부에 대해 실무검토조차 끝내지 않은 상황에서 ‘증설 불가’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특정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을 놓고 실리를 면밀하게 따져보기도 전에 대통령이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성급한 개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검토 진행 중이지만 대통령 뜻이니…” =하이닉스의 수도권 공장 증설 여부와 관련,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는 5일 “아직 검토가 진행 중이며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 “예정대로 오는 15일 최종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도 일정을 보고했는데 갑자기 그런 얘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하이닉스 문제에 대해 실무검토를 마친 뒤 다음주 중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논의하고 청와대에도 보고하는 한편 당정협의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하이닉스 수도권 공장증설 불가’로 기울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 문제는 대통령이 하신 말씀과 정부의 입장이 같은 쪽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다만 당과 협의도 않은 채 결론을 내려 국민을 무시하는 것처럼 모양새가 좋지 않아져 아쉽다”고 말했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도 이날 “하이닉스 이천공장 허용 여부는 단순히 수도권 신증설보다 수도권 상수원의 환경문제”라고 설명하며 전날 노 대통령의 발언 파장을 줄이려 애썼지만 결론은 결국 “(하이닉스 수도권 공장 허용이) 어렵다”로 귀결됐다. ◇정치논리에 국익은 외면하나=노 대통령이 하이닉스 문제를 놓고 정부의 검토가 진행 중인 것을 뻔히 알면서 ‘증설 불가’에 방점을 찍은 것은 참여정부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균형발전정책의 고삐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국민적 지지도는 바닥을 기고있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가 ‘레임덕’에 빠진 것은 아니다는 자기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게 과천 관가의 해석이다. 아울러 하이닉스의 이천공장 대안으로 꼽히는 청주공장 증설을 유도해 지방 민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 문제인 수도권 공장 증설 허용마저 그 결정이 명분과 정치논리에 더 휘말리게 되면서 전체 국익엔 손실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외환위기의 험난한 터널을 뚫고 가까스로 재기한 하이닉스는 현재 격화되는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 말리는 경쟁 속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청주공장은 다른 투자계획이 있고 상수원 환경오염 문제는 첨단기술을 이용해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며 “주요 투자계획이 공개된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불허하면 향후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