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 & Story] 샘표 이끌어온 3대의 뒷얘기

박 대표는 할아버지인 박규회(1976년 작고) 창업주, 부친 박승복(89) 대표이사 회장에 이어 3대 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함경남도 원산금융조합 부이사를 지내다 소련군이 진주하자 1945년 월남했던 박규회 회장은 처음에는 서울 명동에서 학생복 도매업을 했다. 샘표는 그가 ‘미스야’식초로 유명했던 삼시장유라는 일본인 소스 회사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인수 대금은 교복상을 해서 번 돈과 아들인 박승복 회장이 식산은행(한국산업은행의 전신)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마련했다. 그 때가 1946년. 당시만 해도 간장, 된장은 집에서 만드는 것이지 사서 먹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주부들을 상대로 1대1 마케팅을 벌이고 시식행사도 열면서 사세를 키워 창업 9년 만인 1954년 결국 장류 업계 1위에 올랐다. 그 해 샘표라는 상표를 특허청에 등록, 샘표는 국내 최초의 상표라는 타이틀도 얻는다. 샘표하면 뭐니뭐니해도 ‘보고서도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라는 CM송이 먼저 떠오른다. 샘표의 CM송은 1960년대 가수 김상희씨가 불러 소비자의 뇌리에 샘표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22년생으로 올해 구순을 맞은 박승복 회장은 직장 경력이 무려 70년에 달한다.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 등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샘표식품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갖기도 했다. 박승복 회장을 소개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일화가 지난 1985년에 발생했던 위기다. 그 해 8월에 영세한 무허가 간장 제조업자들이 소금물에 검은 색소를 타 간장을 값싸게 팔아먹은 사실을 알려지면서 샘표가 엉뚱하게 타격을 입었던 것. ‘간장=샘표’라는 공식이 성립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승복 회장은 고민 끝에 직접 TV 광고에 출연해 샘표 제품이 문제 없음을 강조했고, 주부들의 공장 견학을 제의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박진선 대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직원 사랑은 참으로 대단했다”며 “지난 1980년 5월에 샘표의 노조가 설립됐는데 당시에도 아버지께서 직접 노조 설립을 도와주셨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샘표 노조는 그간 사측과 별다른 트러블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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