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만년필 녹음기

미국에서 살아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미국 사회의 특징중의 하나는 시민들의 왕성한 고발정신이다. 단속 경찰이 안 보인다고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웠다가 어느 틈에 나타나는 경찰을 보고 놀라는 일이 흔한데 그 신속한 출동의 배경에 시민들의 고발정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 우리 사회에도 고발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 하다. 다만 미국의 그것이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자발적이고 건전한 시민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고발문화는 정부가 교통규칙 위반 신고에 대해 보상금을 내걸고 있는 사실에서도 짐작이 가듯이 그 작동이 이기적인 동기에 있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부정한 일을 함께 모의하거나 범법행위에 가담했던 사람이 양심선언이란 이름으로 공범자들을 고발하는 일이 빈번하고 권력이 개입된 경우 현장의 대화내용을 은밀히 녹음하였다가 일이 잘 못되었을 때 구명을 위한 협박자료로 이용하려는 파렴치한 작태마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런 고발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적 윤리관은 남의 치부나 잘못을 들추어 문제를 삼는 것을 잘하는 일로 여기지 않았다. 공자(孔子)도 제자인 자공(子貢)으로부터 '어떤 유형의 사람을 싫어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남의 나쁜 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남의 밑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사람'을 꼽았다 한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유교적 가치관이나 윤리관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부정을 감싸주어야 한다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다만 개인이나 집단의 사리(私利)를 위한 방편으로 고발이나 신고가 남용되고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인간적인 신뢰관계마저 무너진다면 고발로 얻는 득 보다는 폐해가 더 크리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어느 권력형 비리사건에서 사건 전말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자 그 녹음에 사용된 만년필 형태의 비밀녹음기를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는 보도는 이런 걱정을 실감나게 한다. 신성순(언론인)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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