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10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전체적인 형세를 분석해 보면 흑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도처에서 백은 겨우 두 집씩 내고 산 모습일 뿐 이렇다할 큰 집이 없는데 흑은 하변만도 15집이고 곳곳에 잠재력이 크다. 큰 사고만 나지 않으면 흑승. 박영훈은 그렇게 믿었다. 백이 가에도 나에도 끊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축머리인 11로 눌러가면 바둑은 흑의 필승. 박영훈은 그렇게 믿었고 즉시 11로 두었는데…. 이때 백12가 조용히 놓였다. 뭐 그런 수가 있었나. 박영훈은 한참 그 수를 내려다보다가 낯빛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해설실의 한철균은 말했다. “불각(不覺)의 한 수! 정문(頂門)의 일침! 구리는 이리저리 얻어터지면서도 역습의 한 방을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아, 우리의 박영훈. 애석하게도 거대한 대마를 잡히고 패하게 됐습니다.” 흑11은 멋진 수였다. 그러나 그 전에 치러둘 수순이 있었다. 참고도1의 흑1로 18급 하수같이 대마를 연결했어야 했다. 그러면 백은 2로 자기 대마를 살려야 했고 그때 3으로 갔으면 그야말로 흑의 압승이었다. 백4면 흑5로 헤딩. 중앙 백돌이 미생이므로 백은 그대로 지옥이었다. 참고도1의 백4로 참고도2의 4에 끊는 반발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5에서 13까지로 역시 흑의 압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