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한국에 은행이 한 곳 뿐이라면

"고객 돈은 본전도 못 건져주면서 은행들은 무슨 염치로 임금을 올린다고 난리인지" 지난 연말 한 지방공무원이 사석에서 기자에게 던진 넋두리다. 팍팍한 봉급에서 아껴 모은 돈을 매달 은행 정기예금이나 적금에 꼬박꼬박 넣고 있지만 물가를 감안하면 마이너스 수준인 예금금리. 그나마 참아내며 십 수년 간 믿어온 주거래 은행에 대출이라도 신청하면 쥐꼬리만큼 깎아주는 이자율은 차치하고라도 대출한도 조금 늘리는 것도 왜 그리 힘든지. 이런 한탄을 늘어놓던 그는 주요 은행 노조 중에 두 자릿수의 임금 인상률을 요구하는 곳도 많다는 기자의 설명에 발끈했다. 그는 "민간은행 다 통폐합해서 한 곳만 둬도 국민경제엔 아무런 피해가 없지 않느냐"는 극단론까지 내뱉었다. 이 공무원의 쓴소리를 놓고 은행원들은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금융공학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며 은행의 산업 구조와 시장 논리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라고 핀잔을 줄 것이 눈에 선하다. 은행원의 노동 가치를 폄하하느냐는 질책도 나올 법하다. 물론 대한민국의 은행원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원의 고된 노동의 결실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은행이 이익을 내면 고객에겐 예금이자 인상이나 대출금리 감면과 같은 혜택이 실현되는가. 이익을 내면 임직원끼리 임금잔치로 나눠먹고 남은 지게미마저 주주배당ㆍ유보금으로 쌓아놓은 뒤 고객의 수익환원 요구에는 경영건전성 운운하며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은행은 정부의 라이선스라는 경쟁제한 장벽에 기대 적당히 내수시장을 나눠먹을 수 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면 오히려 예금자 보호법 덕분에 몰려오는 예금고객이 줄을 잇는다. 혹시 경영을 잘못하거나 시장환경이 불안해 은행에 부실 우려라도 생기면 정부가 먼저 나서서 건전성 관리를 주문하고 사후에는 부실까지 떠안아준다. 이런 온실에 안주하는 은행은 아무리 스스로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국민들로부터 '놀고 먹는다'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고객을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면 시장에 은행이 한 곳인 것과 무엇이 다를까. 새해에는 고객을 위해 변신하는 은행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