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갈치야?”
매일 저녁상에 올라오는 같은 반찬을 두고 하는 필자의 볼멘소리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네에는 용달차에 채소와 과일ㆍ생선 등을 잔뜩 싣고 와서 헐값에 파는 뜨내기 장사가 등장했다. 요일을 정해놓고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당일 입소문으로 장이 벌어져 서로 아우성을 치며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식이다. 장바구니 가격에 전혀 문외한인 필자도 놀랄 만한 가격으로 세일을 하니 한푼 두푼 아껴가며 살림을 하는 주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쇼핑 기회일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집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싼값’의 매력에 혹해 사오는 지나친 양(量)이다. 지난 몇 주 동안 빠지지 않고 매일 저녁상에 올라오는 찬은 갈치였다. 집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니 제주도산 갈치가 얼마 전 특별 세일을 해서 무려 두 박스나 사왔다는 것이다. 최근 결혼을 해서 분가한 큰 아들과 유학 중인 작은 아들을 빼면 집사람과 필자 단 둘뿐인데다가 회사 일로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두 박스의 갈치는 하루 세끼를 먹어도 어림잡아 한달 이상은 걸려야 한다. 결국은 돈을 아낀 것이 아니라 과도한 미래의 반찬을 장만하기 위해 한달 이상 돈을 ‘잠겨놓은’ 생활 속의 낭비인 것이다.
경영에서는 경영활동을 위해서 투입했지만 현금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런 ‘잠겨 있는 돈’을 ‘운전자금(working capital)’이라고 부른다. 즉, 제품을 만들어 팔고 회수하지 못한 외상매출금, 그리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쌓아둔 원자재와 아직 팔리지 않은 제품 재고 등이 해당된다. 운전자금이 늘어나는 만큼 금융비용도 상대적으로 늘어나므로 회사의 운전자금은 매출액에 비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만큼 현금보유 능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앞서 예를 든 두 박스의 갈치도 과도한 미래의 반찬거리가 냉장고에 현금으로 잠겨 있는 것이고 제때에 처리되지 못하면 상하게 되어 결국 폐기할 수밖에 없으니 이것은 잠겨둔 현금을 버리기 위해 또 다른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빠듯한 가계의 운전자금, 즉 생활비를 써보지도 못하고 낭비하는 것이다.
경기의 하강신호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제는 기업은 물론 가정에서부터 불필요하거나 과도하게 잠겨 있는 운전자금을 찾아내 이를 줄여나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 때다. 집에서는 가끔가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꽉 찬 음식물을 이런 맥락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집사람과 의논해볼 만하다. 물론 집사람과 말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