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7월 7일] 어느 中企 사장의 속앓이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중소기업 사장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사장은 대뜸 기자가 직전에 썼던 자신들의 신제품 개발기사를 인터넷에서라도 내려줄 수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기자가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고 판단해 큼지막하게 다뤘던 기사를 뒤늦게 내려달라고 부탁하는 속사정은 이랬다. 이 회사와 하청관계를 맺고 있던 원청업체 측에서 기사를 본 후 미리 허락도 안 받고 제멋대로 홍보를 하면 아예 거래관계를 끊어버리겠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해왔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을 다녀보면 이처럼 자신의 성과나 실적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을 심심치 않게 접하고는 한다. 코스닥 기업들이 실적 공개를 앞두고 대기업의 눈치를 살피며 '적정 수준'을 찾느라 전전긍긍한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코스닥시장의 한 관계자는 벤처기업이 남다른 특허기술을 갖춘 전자부품을 독점 공급하고 있지만 제품 생산량이 원청업체에 알려질까 몸을 사리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자신들이 애써 개발한 제품을 납품했더니 대기업 담당자가 그 공을 가로채고 연말에 큰 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흔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갑을관계'에 비유하고는 한다. 그나마 대기업은 남의 이목을 신경 쓰다 보니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1차 벤더나 중견기업들은 막무가내식 행태를 보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물론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납품단가나 생산량에 대한 결정을 전적으로 최종재 생산업체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자기 것인 양 홍보하거나 납품사실을 밝히는 것조차 눈치 보게 만드는 행위는 개발의지 자체를 꺾는 일이다. 세계시장에서 국산제품이 기술력을 인정받는 것 뒤에는 볼트ㆍ너트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공을 들인 부품업체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자신들이 받더라도 최소한 묵묵히 고생한 부품업체들의 '공'을 빼앗는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 탄탄한 뿌리산업이 없다면 세계 속 한국 기업도 모래 위의 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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