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불황틈탄 사기극/사회부 윤종렬 기자(기자의 눈)

검찰에 적발된 변인호씨 사기사건에 일부 재벌회사들까지 농락당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액만도 1천8백억원대로 메가톤급이고 수법도 과거 「이장사건」과 「박영복사건」을 합쳐놓은 「종합판 사기」였음이 드러나고 있다.변씨는 무역사기에다 어음사기·주가조작사기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했다. 그는 부도를 막기 위해 사채시장을 통해 긴급자금을 마련하려는 기업체의 약점을 최대한 악용했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H사 등은 시중에서 어음할인이 어렵게 되자 변씨에게 어음할인을 해달라고 약속어음 6백28억원어치를 발행했다가 그대로 떼이고 말았다. 이는 지금 사채시장에서 「5대그룹 이외의 어음은 할인이 안된다」는 소문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데서 또다른 충격이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은 위기에 빠진 한국기업의 현주소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변씨는 특급호텔만 드나들었고 지갑에 30억∼40억원대의 수표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고급 승용차에 보디가드까지 대동하고 다녔다니, 사기꾼의 풍모가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고 남는다. 이런 사기꾼에게 재벌기업까지 당했다는 사실은 작금의 불황을 탓하기에 앞서 기업경영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동안 우리의 대기업들은 온실속에서 자라온 탓인지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저 쉽게 사태를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다.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일단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보자는 식이다. 허세로 치장된 변씨를 한번 정도 의심을 갖고 신중하게 대처했더라면 사기극에 말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려울수록 정도를 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번 사건은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관련기사



윤종열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