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해킹해 입찰 가격을 조작하고 이를 통해 거액의 관급공사를 불법으로 낙찰받은 일당 28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조재연 부장검사)는 3일 컴퓨터 등 사용사기 및 입찰방해 혐의로 프로그램 관리자 윤모씨와 입찰 브로커 유모씨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건설업자 박모씨 등 1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해외로 도피한 해킹 프로그램 개발자 김모씨 등 4명을 지명수배했으며 범행 가담 정도가 가벼운 건설업자 3명에 대해서는 입건을 유예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사 발주처인 경기·인천·강원지역 지방자치단체와 나라장터를 오가는 입찰 정보를 해킹한 뒤 낙찰 하한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35개 건설업체의 공사 77건, 총 규모 1,100억원 상당을 불법 낙찰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낙찰 하한가의 산정 기준인 예비가격(예가)을 직접 조작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악성 프로그램을 지방자치단체 재무관 컴퓨터에 몰래 설치한 뒤 나라장터 시스템에서 공사 입찰을 위해 예가를 전송하면 이를 조작하는 식이다.
입찰 참여기업이 나라장터에 예가를 보내면 악성 프로그램이 관급공사의 공고 번호와 공사 기초금액 등을 토대로 일정한 산술식에 따라 예가 자체를 아예 새로 만든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진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기존에는 단순히 재무관 컴퓨터에서 예가를 빼내는 데 그쳤다면 이번에 적발된 사례는 예가 자체를 조작했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4월 재무관 컴퓨터에서 예가를 빼내는 방식으로 경북지역 관급공사 291억원 규모를 불법 낙찰 받은 일당 26명을 입건했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 가운데 인천 지역에서는 2010년 11월22일 연평도 피격으로 인천 옹진군 일대에 시설공사 수요가 예상되자 이듬해 4월16일 옹진군의 담당 공무원(재무관) PC에 침입해 악성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옹진군이 발주한 공사를 불법 낙찰 받았다. 해당 공사는 피폭건물 복구, 대피호 건립 등 203억원 규모의 공사 12건이다.
입찰 브로커가 알려준 가격으로 관급공사를 낙찰 받은 건설사는 브로커에게 통상 낙찰가(부가세 제외)의 4∼7%를 현금으로 건넸다. 이렇게 브로커들이 받아간 낙찰 대가는 모두 34억6,000만원을 웃돌았다.
검찰은 "이번 범죄는 지자체 공무원과의 결탁, 건설사와의 담합 등 예전의 전형적인 범죄에서 벗어나 나라장터 전산시스템 해킹을 통해 낙찰가를 조작한 신종 입찰 범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