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가 신뢰 상실을 자초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철칙으로 삼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으로 여기고 있는 국민들과의 약속과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지난주 야심작으로 내놓은 세법개정안은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사실상의 증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세목신설이나 세율인상이 없었던 만큼 ‘증세는 아니다’라고 항변하다가 되레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60%선을 지켰던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율도 54%로 뚝 떨어졌다. 급기야 박 대통령이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불호령을 내리자 다음날 부랴부랴 수정안을 내놓는 촌극을 빚었다. 국민 세금과 직결되는 세법개정안을 장고(長考)하지 않고 하루 만에 수정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민첩함에 국민들은 과연 박수를 보냈을까, 아니면 급조된 방안이라고 쓴웃음을 지었을까.
기초연금도 신뢰 상실의 길을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를 수정해 소득계층에 따라 매월 4만~20만원을 차등적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복지재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소득 상위 20~30%에는 아예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했고 정부도 이 같은 방향에서 기초연금 제도를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가 당초 국민들과 약속한 대선공약과 달리 수정안을 내놓는 것에 대해 무조건 매도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여건과 재정상황이 바뀌면 정책 내용에도 수정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변경하고 ‘우리가 옳다’라고 강요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국민들과의 신뢰도 스스로 깨뜨리는 자충수가 되고 만다. 세제개편ㆍ기초연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대규모 지방공약, 통상임금, 정년연장 등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공약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국민대타협위원회ㆍ노사정위원회 등 국민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기구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 내용이 변경될 때에는 솔직하게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민을 이기는 오만한 정책 입안자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vicsj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