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보화시대, 열정으로 살아라"

사회적책임·정보공유등 디지털시대 대안윤리 제시■ 해커, 디지털시대의 장인들 리누스 토발즈 외 지음/세종서적 펴냄 '해커'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남의 컴퓨터에 무단 침입해 정보를 열람하고 빼내거나, 시스템을 파괴시키는 이들을 지칭한다. 사람들은 해커들을 인터넷 시대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당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해커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자곤 파일(jargon file)이라는 사전은 해커를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960년대 초 미국 MIT의 열정적인 프로그래머 집단이 스스로를 해커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는 자곤 파일의 해석과 맥을 같이 한다. 해커들의 열정은 인터넷을 창조해냈고, 인터넷은 자본주의에 상상할 수 없는 강한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인터넷 창조자들이 오히려 인터넷에 강력한 태클을 걸고 있으며, 정보지식과 관련한 각종 소유권 제도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도전하는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 영화사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Divx파일, 인터넷 서버의 40퍼센트를 점하는 삼바, 음반사를 자극하는 냅스터나 소리바다.. 이 모두가 해커들의 작품이다. 해커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만의 독특한 윤리에 기반한다. 해커들은 정보 공유가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으며, 무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정보와 컴퓨터 자료에 대한 접근을 최대한 용이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전문기술을 공유하는 것을 의무로 삼고 실천한다. 리눅스의 개발자이며 '해커의 대부' 격인 리누스 토발즈의 저서 '해커, 디지털시대의 장인들'은 해커들의 도전을 통해 정보시대 새로운 노동윤리를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은 "해커란 무슨 일이건 열정을 갖는 전문가"라는 규정 아래 20세기초 막스 베버의 저작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제시한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를 대신할 보편적인 대안 윤리로 '해커 윤리'를 내세운다. 책의 원제 '해커 윤리(THE HACKER ETHIC- the Spirit of the Information Age)'가 주제의식을 보다 뚜렷하게 보여준다. 리누스 토발즈는 생존ㆍ사회적 삶ㆍ오락 등 해커를 자극하는 3가지 단계를 '리누스법칙'으로 제시한다. 생존이란 자신의 생명을 걸 만한 근본적인 동기를 의미하며, 사회적 삶은 이보다 좀 더 진전돼 자신의 생명보다 '사회적 관계'를 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계이다. 오락은 생존이나 사회적 관계보다 더욱 강렬한 동기이다. 리누스는 "아마 아인슈타인이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려고 골몰한 것은 그의 탐구에 흥미와 도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돈은? 돈은 분명하지만 해커들에게 궁극적인 동기는 되지 못한다. 이들에게 돈이란 단지 물물교환의 수단일 뿐이다. 이처럼 '해커 윤리'는 이윤을 핵심동기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대비된다. 두 윤리는 노동윤리에서도 차별성이 크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노동을 '소명'으로 받아들였지만, 해커 윤리에서 노동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다. 이 책은 사적 소유 및 이윤 동기에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윤리에 대한 반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윤의 증식, 돈의 가치 등 자본주의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해커의 자유를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선결돼야 한다며 자본가적 재산증식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자가당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경쟁'보다는 '공존'을, '독점'이 아닌 '공유'의 정신을 표방하는 해커 윤리는 배금주의의 탐욕으로 병들어 가는 디지털사회에 던지는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이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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