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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총선에서 아베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일본의 우경화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자민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현행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며 주변국을 위협하는 가운데 일본 우익의 왜곡된 역사관을 천황제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 출간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오랫동안 일본 신화를 연구해 온 저자는 모두 8세기에 쓰여진 '고사기'와 '일본서기' 속에 나타난 천황 신화 분석을 발판으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일본 신화', '신도', 그리고 '천황' 3각 구도로 설명한다. 특히 일본이 근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선택한 '천황'이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제국주의 침략을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논리적으로 파헤친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삼한 정벌 신화다. 신공황후가 바람의 신과 파도의 신, 그리고 물고기의 도움을 받아 신라를 정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신화는 허구일 뿐이다. 하지만 삼한 정벌 신화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후 1,300여년 동안 일본이 내우외환을 겪을 때마다 조선정벌론인 정한론(征韓論)의 근거로 작용했다. 특히 일본 고대 문헌 신화 중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는 것은 천손 니니기의 강림 신화와 그의 후손인 진무 천황의 건국 신화다. 진무 천황의 건국 신화는 중세까지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가다가 에도 막부 말엽부터 근대인 메이지 시대 초엽에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한다. 일본인조차도 역사가 오래됐다고 착각하는 천황 숭배는 근대 메이지 정부의 작품으로, '창조된 고전'일 뿐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일본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근대화의 후발주자인 일본이 서구의 제국주의에 편입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의 주도 하에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창조됐다"며 "당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나간 당사자들은 '근대국민국가의 창출'을 위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천황제를 이용하려고 한 것이지, 천황 그 자체를 숭배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구르는 동안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 국민에게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실로 자리잡았다. 단군신화도 진무천황의 건국신화도 같은 천손신화지만 신화에만 그친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현신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특히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중요한 논리적 근거로 작용했던 '팔굉일우' 개념에 주목한다. '팔굉일우'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말로 '엄팔굉이위우(掩八紘而爲宇)'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는 초대 천황 진무가 나라 시의 가시하라에서 즉위하면서 했던 말로, '천하를 덮어 내 집으로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 아닌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팔굉일우는 대동아공영권의 슬로건이 되면서 일본을 침략 전쟁으로 몰아 넣는다. 일본은 대동아전쟁이라는 침략전쟁을 아시아 해방 전쟁으로 미화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을 통해 미래의 군인이 될 아이들에게 이 전쟁을 철저하게 성전(聖戰)으로 인식시켰다.
저자는 "일본 제국주의가 창출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이 이를 미화하고 추모하는 한 현대사일 수밖에 없다"며 최근의 우경화 조짐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일본 우경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본 국민과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깨닫고 일본의 뜻 있는 민간단체와 연대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맞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2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