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전순옥 칼럼] 스쿠루지와 마트 노동자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스크루지도 크리스마스엔 직원을 쉬게 했다네

영국인에게 크리스마스는 1년 내내 준비하며 크리스마스를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날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선물을 사기위해 아침 일찍부터 시민들이 마트 앞에서 긴 줄을 서는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크리스마스 당일엔 모든 상점들이 휴점을 하기 때문이다.


1년 중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하는 12월, 크리스마스에 마트 문을 열면 높은 매출을 올리겠지만 영국에선 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2004년 제정된 크리스마스 영업법(Christmas Day Trading Act)에 따르면 매장면적 280㎡ 이상(약 85평)의 상점은 크리스마스에 영업을 할 수 없다. 이 법안을 어길 경우 최고 5만 파운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스크루지조차도 크리스마스에는 자기 직원들을 쉬게 했다는 것이다. 이를 법률로 규정한 이유는 최대 소비가 이뤄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격무에 시달리는 마트 노동자들의 휴식권과 더불어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명절을 즐길 권리를 보장하려는 취지이다.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과정이 영국 사회도 쉽지 않았다. 영국에서도 대형마트의 휴일 영업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을 빚었다. 1991년 영국의 대형마트 테스코 등이 크리스마스 황금 대목인 12월 첫 주와 넷째 주 일요일에 영업하겠다고 선언했다. 유통 재벌들은 경제가 어렵고 더 이상 과거에 만든 법에 매달려선 안 되며, 소비자들도 일요일 쇼핑을 원하고 있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자 시민들과 골목상권을 지키려는 일반 소매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대형마트들을 비난했다. 대형마트들의 주장이 돈 욕심 때문이지 소비자 요구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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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통 재벌들이 말한 ‘과거에 만든 법’이란 1950년에 제정한 일요휴무법(상점법)이다. 일요일에 전면 영업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했는데 1994년까지 유지되었다가 일요일 영업법(Sunday Trading Act)으로 완화되었다.

1994년 제정된 일요일 영업법에 따르면 매장면적 280㎡ 이상의 소매점은 일요일 영업을 금지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얻어 예외적인 영업이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최대 6시간 영업할 수 있다.

영국의 명절에 마트 노동자는 쉴 수 있을까? 그렇다. 일요일 영업법에 따르면 부활절 등 명절에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불허한다. 또한 2004년 영국은 크리스마스 영업법(Christmas Day Trading Act)을 제정해 명절에 노동자들이 쉴 수 있도록 강화했다.

이게 단지 영국의 사례일까? 아니다. 독일, 뉴질랜드, 호주 등 법으로 일요일에 쉬도록 한 나라는 많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일부 국가는 일요일 휴무법이 일요일 영업법으로 바뀌었지만 제한적 영업(6시간 이하)만 가능해졌다. 그러나 명절 휴무만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대형마트 430개, SSM(준대규모점포) 1400여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수만명의 노동자와 수십만명에 달하는 가족들에게 추석과 설날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들에게 명절은 없다. 유통재벌들이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업에 진입한 이후 지난 20년 동안 노동자들은 가족과 명절을 보낼 수 없었다. 이렇게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은 얼마나 될까? 평균시급 5500원, 월급여로 100만원 수준이다. 참 적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매달 이틀 공휴일에 의무휴업을 하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추석과 설 명절에 대한 규정은 없다. 유통업계가 자진해서 노동자의 휴식권과 가족과 명절을 보낼 권리를 보장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권리를 법으로 다 명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지금이라도 법으로 보장하지 않으면 영영 마트 노동자의 권리는 회복될 수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마트 노동자에게 명절 휴식권을 돌려줄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영국의 구두쇠 스크루지도 놀랄 만큼 이윤만을 앞세우는 유통재벌의 반 인권적 행위에 ‘안녕’을 고할 시점에 서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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