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상장사 10% '경영권 위험'] M&A시장 실태는

'준비안된' 개방… 투기자본 놀이터로<br>해외언론, 선진국 이미 시행 방어장치 추진까지<br>

환란 이후 7년여 동안 한국의 기업과 금융시장은 ’외국인들의 놀이터’였다.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재무개선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외국 자본은 한국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들어오고 나가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외국인이 지분을 5% 이상 보유 중인 기업은 지난 2002년 말 79개에서 올 2월 말 151개로 3년 만에 2배로 늘었다. 10%대에 불과했던 국내 상장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지분율은 어느새 40%를 넘었고 론스타 등 투기자본은 헐값에 국내 은행들을 집어삼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뉴브리지는 제일은행을 사들여 1조5,000억원의 차익을 남겼지만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상공회의소가 코스피200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전체 기업의 18.2%가 경영권 유지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국내 시장이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변질돼가는 상황에 정부가 손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불과 6개월 남짓. 그나마 극히 제한적 수준에 머물렀다. 공개매수 기간 중에 신주발행을 허용하는 장치는 도입조차 되지 않고 있고 기껏 실행에 옮긴 게 ‘5%룰’과 외국인이사 수 제한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해외 언론의 도움을 받아 걸음마 단계인 국내의 적대적 M&A 방어장치에 ‘국수주의’라는 명문을 내세워 맹공을 퍼부었다. 외국인이사 수 제한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이 통과될 경우”라는 ‘가정법’을 동원해 유럽연합(EU)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문제는 이들 제도가 외국에서는 이미 실행 중임에도 외인들이 흥분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임원은 “외국인들은 IMF 당시 외자유치를 위해 목을 매달던 한국정부가 먹고 살 만해졌다고 갑작스럽게 규제를 꺼내려고 하는 모습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자기들 나라에서도 시행 중인 제도의 문제 그 자체를 건드리다가 명분이 약해지면 다시 ‘정책의 일관성’을 내세워 우리의 정책기조 전환 움직임에 족쇄를 채우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외국인들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방어수단을 구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제 전문가들은 투기자본이 아무리 밉더라도 외국인의 투자분위기에 부정적 요인이 될 정책들을 조급하게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신 역차별에 시달리는 우리 기업에 경영권 방어장치를 만들어주는 작업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해 5월 “적대적 M&A 방어장치를 ‘글로벌 수준’에 맞게 고치겠다”고 밝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역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산업자본은 시중은행에 대해 4%를 초과하는 의결권과 10%를 초과하는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부정적 입장을 밝힌 ‘차등의결권제도’도 다시 한번 고려해야 할 요소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스웨덴 에릭슨과 사브, 독일 폴크스바겐 등 대표기업들은 대부분 경영권 안정을 위해 이 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김용기 연구원은 “개방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국민경제 단위의 조절장치가 필요하다”며 “외국인 투자가 국익과 공공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전에 심사하고 사후에라도 철수를 명령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이사 수 제한은 건전성 규제에 포함되기 때문에 WTO의 사전 양허를 구하지 않더라도 규정을 만들 수 있다”고 밝힌 삼성경제연구소의 지적도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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