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60만 재일동포 오늘(한민족경제권이 떠오른다)

◎“도산막자” 금융기관 합병 가속/부실채권·적자 눈덩이 “이대론 끝” 공감/내년 1월까지 신용조합 대규모화 마무리/교포 SW·중공업 사업 총력지원 다짐지난 5월14일 일본의 한민족계 금융기관에게는 주목할만한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다름아닌 조총련계 5개 금융기관의 합병소식. 오사카신용조합을 주축으로 경도·효고·나라·와카야마 등 5개 신용조합이 오는 11월17일 정식 합병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합병금융기관의 정식 명칭은 「조은근기신용조합」. 한민족계 금융기관의 이같은 합병작업은 지난 93년 7월 재일동포 이희건씨 소유의 신용조합인 오사카흥은과 4개 지역의 한국계 신용조합(고베·나라·사가·와카야마상은)간 합병을 필두로 일본내 70개가 넘는 전체 한민족계 금융기관으로 확산되고 있다. 93년 당시 이들 5개 금융기관의 합병으로 탄생된 간사이고긴(관서흥은)은 합병 4년만에 일본내 전체 신용조합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대형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했고, 이 성공적인 합병은 한민족계 금융기관의 짝짓기에 자극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한민족계 금융기관에 이처럼 합병바람이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한국자본 살아남기」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한신협 92년부터 조정 유도 90년대 일본의 부동산값 폭락(자산 디플레이션)으로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의 결과 금융기관에도 도산회오리가 몰아쳤다. 「복합불황」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일본내 구조적 불황 한파는 한민족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방후 암시장에서 반세기도 안돼 72개(재일동포계 34개, 조총련계 38개) 금융기관 설립으로 발전하기까지 한민족 금융기관에게는 지난 5­6년만큼 많은 시련을 안겨준 시기도 드물었다. 부동산값 폭락에 이어 중소기업의 잇단 부도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일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눈덩이처럼 급증했다. 이같은 사태는 한민족계 금융기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한민족계 금융기관에게 최대 고객이던 빠찡꼬사업마저 쇠퇴의 기미를 보였다. 무엇보다 일본 대장성이 내년 4월부터 소위 「조기시정조치」라는 제도를 본격 시행, 금융기관들이 자신의 부실채권을 정부에 보고토록 한 것은 금융기관 합병을 강요하는 촉매 역할을 해냈다. 대장성의 계획대로라면 당장 부실이 많은 금융기관들은 내년 하반기부터 강제 통폐합 당해야하는 처지다. 재일동포계 금융기관으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간사이고긴(관서흥은)의 고위 관계자는 이같은 상황을 맞은 일본내 금융기관들의 대응방안을 두가지 소개했다. 우선 대손충당금 적립을 늘려 부실규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금융기관의 이익감소를 수반하기 마련. 일본 금융계에서는 부실채권 정리로 인해 올 회계연도말 거의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적자를 면키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한민족계 금융기관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부실채권 정리가 소극적 대응방안이라면 금융기관간 합병은 한민족계 신용조합들이 택한 가장 적극적인 작업이다. 어찌보면 합병작업은 일본내 금융산업의 빅뱅(대변혁)의 와중에서 한민족계 금융기관들이 선택한 「살아남기」 몸부림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다행히 한민족계 신용조합의 구조조정 작업은 지난 92년부터 진행되기 시작, 이제 본격적인 결실을 맺고 있다. 민단 관계자에 따르면 재일동포계 신용조합의 경우 재일한국인신용조합협회(한신협) 주도로 일본 전지역을 5개 블록(동경,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후쿠오카)으로 나눠 이들 지역내 신용조합간의 합병작업이 구체화하고 있다. 민단과 한신협측은 늦어도 내년 1월말까지 신용조합간 합병작업을 마무리짓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자본 살아남기」는 산업구조의 개편작업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아직까지 일본내 한민족경제의 중추는 빠찡꼬산업이다. 빠찡꼬는 일본내 한민족이 창출하는 부의 절반이상을 점유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이후 빠찡꼬산업은 뚜렷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정부가 빠찡꼬산업이 도박성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판단, 도박성이 농후한 빠찡꼬기기의 철폐명령을 내려 시장 자체가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30조엔에 달하던 빠찡꼬시장이 지난해 20조엔 규모로 감소한 것은 이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빠찡코 50% 업종전환 고려 그렇다고 마냥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업구조 조정의 기회로 삼고 있다. 오사카에서 빠찡꼬업체를 경영중인 한 재일동포사장은 『한민족 경제가 본격적인 구조개선 작업에 나서게 된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며 빠찡꼬산업의 쇠퇴를 오히려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또 『한민족계 금융기관들도 사업구조 재조정을 위해 최대한 지원키로 한것으로 안다』 며 한민족계 금융기관과 일반기업간 협조도 유기적으로 이루어 질 것으로 내다봤다. 구조조정의 방향은 우선 소프트웨어산업 쪽이다. 동경 한복판에서 빠찡꼬사업을 하고 있는 모사장은 빠찡꼬사업체 사장중 절반 가까이가 최근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재일동포2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사장의 성공은 빠찡꼬사업에 종사중인 한민족에게 미래의 모델로까지 투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경에서 제조업체를 운영중인 모사장은 일본내 한민족 자본이 살아남기위한 처방으로 제조업, 특히 중공업분야로의 진출과 육성을 든다. 화교들이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결국 자본을 제조업에 투하, 재벌만들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제조업체 진출과 착근이 먼 미래까지 한민족이 생존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의 불황은 몇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재일동포 사업가들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재일상공회의소연합회에 등록된 사업체수가 비약적으로 증가, 올해 1만개를 넘어선 게 이를 반증한다. 연합회회장을 맡고 있는 한창우 마루한사사장은 『한민족 사업가들이 나아갈 길은 이제 크게 두가지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중공업 분야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중공업쪽은 한민족 경제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필수적 요소다. 90년대 들어 중공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아이리스오야마(사장 조용세)사는 가정용 플라스틱 분야에서 일본 최대는 물론, 세계에서도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업체로 성장했다. ○일 정부·은행차별 여전 그러나 이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현실적인 장애가 적지않다. 일본에서 만난 재일동포 사업가중 상당수는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일본내 한민족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이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한사코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간 일본정부와 금융기관으로부터 당한 차별의 기억때문이다. 덩치 큰 사업을 하려면 자본력있는 사람 여럿이 협력해야 하는 것이 필수다. 그런데 그게 잘 안돼 문제다.』 한민족 자본이 일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 그 길이 금융기관이든, 제조업체이든 간에 무엇보다 먼저 동족간에 뭉치는 작업이 선행돼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현지 동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동경=김영기 기자> ◎인터뷰/이승재 관서흥은 이사장/“업무·서비스첨단화 심혈… 경쟁력 제고·흑자경영” 『한민족계 금융기관들도 일본의 금융대개혁(빅뱅)에 맞게 체질개선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불량채권 처리는 체질개선을 위한 최대 현안입니다.』 일본내 한민족계 금융기관중 최대규모이자, 일본 전체신용조합중에서도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한 간사이고긴(관서흥은). 이승재 간사이고긴 이사장(50)은 당분간 일본내 한국금융기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불량채권 처리와 금융기관간 합병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고 단언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금융개혁 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민족계 금융기관들에게 어떤 영향이 예상되나. ▲일본 금융개혁은 한마디로 일본의 금융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한 것이다. 외국금융기관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민족 금융기관들은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 대부분 지방을 근거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역밀착형의 한민족계 금융기관이 한걸음 도약할 수 있는 찬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합병바람에 대비, 한민족계 금융기관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사실 일본의 금융개혁에 대비, 한민족 금융기관들은 이미 6년전 재일한국인신용조합협회(한신협) 총회이후 준비를 해왔다. 간사이고긴 등 5개 신용조합의 합병은 바로 그러한 준비작업의 1호다. 한신협과 민단을 중심으로 한민족 금융기관들 사이에도 합병움직임들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본다. ­간사이고긴은 일본내 시중은행과의 경쟁력면에서도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비결과 앞으로의 성장전망은. ▲간사이고긴은 현재 점포당 생산성 측면에서 일본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내 신용조합업계에서 처음으로 전자메일을 통한 업무를 시작할만큼 첨단금융서비스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결과 일본내 은행들이 대거 적자에 허덕이는데도 간사이고긴은 지난해 96억엔의 흑자를 남길 수 있었다. 앞으로의 경영전략도 간단하다. 시중은행들이 백화점식 경영을 한다면 우리는 수퍼마켓식 경영을 해나갈 것이다. 성장력은 충분하다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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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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