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청소년 범죄 제재 논의는 어디에


"범죄에 애·어른이 어디 있냐."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형사 억관이 욕설과 함께 한마디 내뱉는다. 중학생 소녀를 강간해 죽음에 이르게 한 10대 소년을 쫓는 억관은 알고 있다. 그 소년은 '미성년자'라는 든든한 방패막 덕에 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소년도 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방황하는 칼날은 중학생 소녀를 강간해 죽음에 이르게 한 10대 소년들, 그 소년들에게 복수에 나선 소녀의 아버지, 그리고 소년과 아버지를 모두 찾아 나선 억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딸을 죽게 한 가해자에게 피의 복수를 하며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아버지를 보며 관객들은 한 번쯤 미성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가 보여주듯 현행 소년법은 미성년 범죄자에 대해서는 온정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시점에 만 18세가 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량이 15년(가중처벌시 최고 20년)으로 제한돼 있고 특히 만 14세 미만은 '촉법소년', 즉 형사 미성년자로 분류돼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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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에 취해 '청소년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상은 이미 영화를 넘어서고 있다. 2013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19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한 혐의로 법원에 송치된 청소년 사건은 2002년 60건에서 2012년 782건으로 13배 이상 늘어났다. 미성년 범죄가 이미 현행법이나 예방교육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동안 정치권에서 형사미성년자 기준을 14세에서 12세로 낮추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만 16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행 범죄 형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이 역시 성년 가해자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영화는 이미 현실이 됐다. 성폭행으로 자살한 딸을 대신해 10대 가해자들에게 복수에 나서는 엄마 유림(영화 '돈 크라이 마미')과 불쌍하게 죽은 딸을 대신해 복수의 칼과 총을 겨눈 아버지 상현(영화 '방황하는 칼날'), 정작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성폭행 가해 학생들을 피해 도망 다니며 사는 공주(영화 '한공주')의 이야기는 늘어나고 있다. 날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 범죄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법적 논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 억관은 가해자의 형량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또 한 번 진한 욕설을 토한다. 씁쓸하다는 듯 동료가 한마디를 툭 던진다. "법이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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