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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달러 과도한 특권 누릴 자격 있는가

■ 달러제국의 몰락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북하이브 펴냄)<br>美경제 하향에도 여전히 강세<br>"기축통화 위상 잃지 않겠지만 복수 국제통화 시대 조만간 올 것"



미국의 부정적인 경기 전망과 유럽의 재정 위기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독 달러는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8월 5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후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7.2%나 급락했으며 인도네시아 루피(5.6%), 말레이시아 링깃(4.0), 싱가포르 달러(3.8%) 등 아시아 통화들도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아시아가 아닌 미국에서 불거진 경제 위기가 왜 아시아 통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경제 여건이 어려워진 미국의 달러 가치가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국제금융 권위자이자 UC버클리대 경제학 교수인 저자는 "유일한 국제 통화 지위에 오른 달러 때문에 미국이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누린다"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전 대통령의 비판을 인용, 달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과도한 특권'을 꼬집는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과도한 특권'은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서 지위를 이미 상실한 미국이 특권을 계속해서 누릴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점에서 시작한다. 현재 세계 외환거래의 85%에 달러가 사용되고 있으며 국제 채권은 45% 정도가 달러 표시물이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도 60%를 웃돈다. 수출입을 포함해 미국을 거치지 않는 국제거래 또한 달러로 결제되는 게 보통이다. 사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달러의 지위는 벨기에 프랑보다 못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저자는 "연방준비은행의 본격 출범과 환어음 시장 활성화 덕택에 1925년부터 달러가 파운드의 독점적 지위를 밀어냈다"고 말한다. 달러가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 후 전세계 국가들은 국제 통화인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유무형의 자원을 제공하게 됐다. 해외 기업과 은행들이 거래 편의성과 이자 소득의 매력 때문에 미국의 화폐와 채권까지 보유한다. 신흥국들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고를 늘리는데 이는 미국에 값싼 자금을 빌려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은 이렇듯 저렴한 해외 자금 덕에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방탕한 소비를 지속할 수 있었다. 저자는 "미국 정부는 남의 돈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 달러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의존성을 활용한다"며 "미국이 국제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상황은 달러의 특이한 지배력과 불편한 긴장 관계를 이룬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달러의 영향력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가계 부문에서 키운 금융위기 위험을 간과했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재정 적자와 대외 부채를 세계 경제가 떠안게 되면서 금융위기를 촉발하게 됐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그렇다면 달러를 대체할 차세대 국제 통화가 등장할 것인가. 저자의 답은 'NO'다. 저자는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위상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며 유로나 위안도 달러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유로는 '나라 없는 통화'라는 점이 걸림돌이고 위안화는 '국가의 개입이 너무 많은 통화'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저자는 금본위제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만든 국제준비자산인 특별인출권(SDR)과 같은 다른 상품본위제가 출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한다. 아울러 시장 패닉이나 정치적 분쟁 때문에 달러가 폭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외국 정부 입장에서도 달러가 폭락하면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투자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미 재무부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도와 달러 폭락을 막는 것이 그들에겐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러의 과도한 특권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통화의 자리가 하나뿐이라는 믿음이야말로 근본적인 오류라면서 중국 인근국가들은 위안으로, 유럽 인근 국가들은 유로로, 미국 인근 국가들은 달러로 거래하는 '복수 국제통화의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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