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가 산업별 교섭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개별기업 단위의 고비용 교섭구조를 개선함으로써 산업평화를 정착시키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산별교섭이 활성화되면 기업별로 진행되고 있는 국내 노사교섭 관행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전망이다.
◇배경과 효과=산별교섭은 금융과 병원, 택시, 금속 등 여건이 비슷한 기업끼리 업종별로 임금교섭을 벌여 큰 틀을 확정한 다음, 세부사항은 개별기업단위의 협상에서 조율하는 방식이다.
산별교섭이 활성화되면 기업별 교섭이 줄어들어 고비용 교섭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현재 5,500여개의 기업별 노조가 있고 이들이 매년 임ㆍ단협을 별도로 가짐으로써 매년 1,700억원 이상의 교섭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산업별 교섭이 활성화되면 임금교섭과 관련한 큰 틀을 업종별로 마련하게 돼 개별 기업은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된다.
특히 산별차원의 파업은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노조도 파업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어 산업현장에서 불필요한 갈등도 줄어들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금융노조가 지난해 정부 차원의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자체적으로 주5일제 도입에 합의한 것은 산별교섭의 효율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정부 적극 지원=김영대 인수위원은 “정부가 산별교섭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다만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함으로써 산별교섭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법 등 관련 법률 개정작업이 적극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사용자단체를 `노동관계에 관해 그 구성원인 사용자에 대해 조정 또는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단체`라고 규정하고 있어 재계가 산별교섭을 기피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계는 “해당 산업을 포괄하는 각종 산업별, 직종별 연합회나 협회를 사용자단체로 인정, 산별교섭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수위는 또 노사정위원회내에 업종ㆍ지역별 위원회를 만들어 노사정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함으로써 산업별 교섭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산별 교섭은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한 상당수의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등은 가장 중앙집중화된 국가 수준의 산별교섭이 이뤄지고 있고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도 산업, 지역단위의 교섭을 통해 노사 현안을 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기업별 교섭에 매달리고 있다. 국내 노동조직에서 가장 많은 조합원을 갖고 있는 한국노총의 경우 산하 28개 조직 가운데 산별노조가 결성된 곳은 금융노조와 택시노조 등 단 2개 뿐이다. 민주노총도 산하 16개 연맹조직 가운데 보건의료와 금속, 전교조, 대학노조가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추진중이지만 회사측의 기피로 산별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재계는 인수위의 산별노조 활성화 방침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노조가 원한다고 산별노조를 정책적으로 유도할 경우 노조의 정치세력화가 우려된다”며 “산별교섭을 도입할 경우 2단계 교섭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노사교섭의 분권화 추세에 역행하는 반개혁적 정책”이라고 밝혔다. 김 전무는 또 “노동계 내에서도 산별노조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며 “산별교섭을 도입할 만큼의 노사관계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산별노조 설립을 위한 장애요인을 없애는 정도의 정책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철수기자,조영주기자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