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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식 투자자들에게 지난 8월과 9월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자고 일어나면 주가가 100포인트 이상 오르내리는 불안한 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8월 이후 2개월여 동안 코스피지수가 50포인트 이상 등락한 날만 무려 17차례에 달한다. 특히 미국의 더블딥 우려가 부각됐던 8월2일부터 6거래일 동안 증시는 무려 17%(371포인트)나 빠졌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한국증시만 하락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도 그랬고 유럽과 아시아 증시도 출렁거렸다. 지나친 시장개방의 부작용 심각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증시의 변동성이 유독 크다는 데 있다. 8월 초 엿새 동안 국내증시 하락률은 미국(7%)은 물론이고 일본(10%), 중국(6%)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우리나라보다 무역의존도가 훨씬 높은 대만(13%)보다도 더 떨어졌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증시의 변동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큰 것일까. 그건 연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의 기반이 취약한 가운데 외국인들의 단타매매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주가가 371포인트나 폭락했던 8월2일부터 6일 동안에 외국인들은 3조2,000억원의 매물 폭탄을 던지며 증시를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케이먼군도와 룩셈부르크 등 조세회피 지역 자금은 악재가 터질 때마다 투매를 일삼으면서 증시 기반을 흔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외환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개방의 문을 활짝 연 후 우리나라는 핫머니 유출입을 직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황이다. 유사시 자본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발동 요건이 엄격한데다 시행기간이 짧아 실효성이 거의 없다. 핫머니가 이 같은 취약성을 놓칠 리 없다. 글로벌 핫머니는 무장이 해제된 한국시장을 마음 놓고 교란하고 있다. 이는 최근 증시 상황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외국인이 1조1,710억원을 내다 팔았던 지난 8월9일에는 국내 주가가 68포인트나 하락했고 같은 달 19일에는 외국인 매도세에 국내 기관들도 가세하자 무려 115포인트 폭락하기도 했다. 9월 들어서도 23일 외국인이 6,000억원 이상 매물폭탄을 내놓자 103포인트나 곤두박질쳤다. 위기 때마다 국내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게 출렁거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2008년의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증시 개방 이후 외국 자금들은 장기 투자보다는 단타매매에 치중함으로써 국내증시는 완전히 핫머니의 놀이터가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외국 자본의 교란에 그다지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은행이나 외국은행 지점의 단기 차입만 일부 규제하고 있을 뿐 파생상품 투자자금 등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토빈세 도입 등 안전장치 마련을 국내 자본시장이 발전하려면 어느 정도는 외국 자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례를 놓고 볼 때 외국자금의 지나친 활동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크다. 특히 금융기법이 발달하면서 급격한 자금 유출입에 따른 시장 교란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는 핫머니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됐다. 다행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사회에서 영미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는 11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단기 외환거래에 대해 세금(토빈세)을 물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기회를 살려 우리 정부도 외국자본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와 금융여건이 비슷한 칠레가 1983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약간의 규제장치를 갖춤으로써 자본시장을 안정화시켰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