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양벌규정 들이밀땐 치명타" 수출 기업들 대응책 마련 고심

검찰, OECD 뇌물방지협약 칼뺀다<br>1992년 서명이후 첫 적용 임원 기소 그쳤지만<br>회사까지 처벌 가능해져 리스크 관리 등 분주<br>檢, 외국공무원·기업인 처벌 강화 시사 촉각


유명 외국계 전자기업의 한국 지사 법무팀에서 근무하는 변호사 A씨는 요즘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검찰 관련 뉴스를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살펴본다. 지난 5월 검찰이 국내 한 물류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중국계 국영회사의 한국지사장을 전격 기소한 뒤부터다. A씨는 이 사건을 시작으로 해외 거래가 잦은 기업들의 뇌물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뇌물 제공 금지 규정 관련 교육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A씨는 "혹시 임직원 중에 뇌물 수수와 같은 불미스런 일에 엮일 경우 법인까지 처벌하는 양벌규정이 적용돼 그 타격은 개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회사 전체에도 엄청난 충격파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직원 교육은 물론 고용계약 상의 뇌물 제공 금지 규정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검찰이 최근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를 금지시킨 'OECD뇌물방지협약'을 12년 만에 적용하자 외국과의 거래가 잦은 대기업들과 해외 기업 국내 지사들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지난 8월 말 개최한 '국제상거래뇌물방지법위반 세미나'에는 국내외 기업 100여명의 기업 법무팀 변호사가 몰려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이 이 세미나에 참석한 국내외 기업 법무팀 소속 변호사들은 부주의로 인한 뇌물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양벌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면책조항 등을 면밀히 따져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5월 인천지검이 국내 물류업체 대표에게서 53억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중국 국영회사인 동방항공의 한국지사장 황모씨(중국인)를 구속 기소한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당시 이 사건은 국내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국내 기업법무팀에는 큰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가 1999년 2월 'OECD뇌물방지협약'에 서명한 이후 내국인이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사건으로 기소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뇌물을 준 국내 물류업체 대표에게도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상 뇌물공여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이 사건에서 양벌규정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법에 양벌규정이 명시돼있는 만큼 언제라도 적용할 수 있어 자칫 개인의 위법행위가 법인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아울러 최근 검찰은 비자금 의혹을 받고 있는 삼부토건에 대해서도 'OECD뇌물방지협약' 규정 적용을 고려하고 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삼부토건이 카자흐스탄에서 공사와 관련해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현지 법조계 인사들에게 수십억원의 뇌물을 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OECD뇌물방지협약은 세계 각 국가가 상대적으로 외국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것에 대한 처벌이 약한 점을 시정하기 위해 1997년 제정된 협약으로 우리나라는 1999년부터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 방지법'을 제정하고 시행에 들어갔지만 실제 적용사례는 지난 5월의 '중국동방항공 뇌물수수사건'이 사실상 최초였다. 그 동안 검찰은 주한미군과 관련된 소규모 군납비리에만 해당 규정을 일부 적용해왔을 뿐 기업 연관사건은 일반적인 횡령ㆍ배임죄로 처벌해왔다. 검찰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 등 외국공무원과 기업인에 대한 뇌물제공 혐의 관련 수사와 처벌의 강화를 시사하는 것이어서 국내 기업은 물론 국내에 지사를 둔 해외 유명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 대기업 계열 상사의 법무팀 관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리스크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관련 사례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는 있다"면서도 "최근 검찰 등 정부가 나서서 부패 관련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여서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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