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배순훈 대우전자 회장(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전문경영인)

◎가전산업 르네상스선도 「탱크박사」/튼튼하고 안전한 한국형제품 만들기 전력/「만년 3위」 오명씻고 작년 수출 1위 이끌어/2000년 세계최대 가전메이커 야심… 글로벌화 박차지난 91년 1월 판매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대우전자 부활의 새사령탑이 된 배순훈 사장. 그는 부임하자 마자 광주세탁기 공장을 방문했다. 공장장으로 부터 브리핑을 받던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세계 최대의 세탁기업체는 어디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세계최대 업체가 되려면 몇대나 생산하면 됩니까.』 공장장이 대답했다. 『미국 월풀입니다. 1년에 4백50만대 정도를 생산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배사장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5백만대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팔면 1위가 되겠군요.』 현장에 있던 임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에 높은 품질불량률, 취약한 애프터서비스 등으로 판매부진에 허덕이면서 「만년3위 운명론」에 빠져있던 상황에서 「세계1등」을 말하는 그의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엉뚱하기 까지 했다. 수출실적은 전혀 없고, 고작 30만대를 만들어 내수시장에서 만년3위를 유지해온 것을 당연시해온 그들에게 배회장의 말은 충격이었다. 김우중 그룹회장으로 부터 대우전자를 부활시키라는 특명을 받은 배사장의 야심과 「고정관념깨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오디오부문을 매각하고, 전자렌지 생산라인을 재배치하는 수술도 단행했다. 컴퓨터등 첨단기술은 힘이 부친다며 투자계획을 취소시켰다. 종업원수를 감축하는 등 과감한 다운사이징으로 재도약을 향한 진군나팔을 불었다. 그는 93년부터 탱크주의를 경영철학으로 정립, 탱크주의시리즈의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대우의 세계경영과 이미지제고에 힘썼다. 「기초가 튼튼한 제품을 생산해 해외로 내다팔자」는 탱크주의는 대우와 배회장(지난 95년부터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탱크주의는 「튼튼하고 안전한 신한국제품」이자 「기본기능에 충실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며, 고장없이 튼튼한 제품」이란 의미로 정립됐다. 또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며, 가장 한국적인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팔린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본주의다. 배회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백투더 베이직」(BB, BaCK To the Basic)을 강조한다. 『세탁기는 세탁이 잘되고 고장이 안나야 하며, TV는 화질과 음질이 좋아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기본기경영은 구조적 경쟁력약화에 빠진 한국기업들이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경영키워드로 부활하고 있다. 「탱크박사」 배회장은 한국기업에 기본기와 함께 가전업계에는 「사양산업」으로 인식돼온 가전산업의 르네상스를 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형 제품론」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국시장에 맞는 제품을 뜻하지 않는다. 독창적인 기술이면서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진국 제품을 그대로 베껴서는 선진국 제품에 반드시 패배(필패)한다는 것이다. 즉 차별화된 제품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필수품경영」으로도 집약된다. 『죽으나 사나 그동안 생산해온 가전필수품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옹고집이다. 상위시장(선진시장)이나 첨단제품보다는 중가제품으로 신흥시장과 개도국시장에서 승부를 겨뤄 체력을 기른후 선진시장을 노크하는 단계적 공략론이다. 이런 신념에서 그는 가전산업 사양을 강력히 비판한다. 『세상은 넓고, 가전제품을 팔 시장은 엄청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리제품으로도 세계시장의 80%라는 광활한 개척할 수 있다. 좁은 내수시장에 연연해 아옹다옹 국내업체끼리 다툴 필요가 없다』. 멀티미디어는 시장이 형성된 후 참여해도 늦지 않다. 대신 첨단제품은 내부적으론 기술개발등으로 꾸준히 실력을 연마, 꽃이 피었을 때 경쟁업체와 승부를 걸만한 값싸고 튼튼한 제품을 내놓아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이같은 견해는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에 대한 숭배론」에 함몰해있는 한국재계에 비판적인 김우중 회장의 철학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배회장의 탱크주의와 기본기 르네상스는 「대우=품질불량」이란 부정적 인식을 씻어내고, 제품의 이미지를 상당히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그가 탱크주의를 알리기위해 직접 광고에 출연한 것도 크게 기여했다. 그의 이같은 경영전략은 이제 열매를 맺고 있다. 무엇보다 5대 주력가전제품(컬러TV, VCR, 냉장고, 세탁기, 전자렌지)의 수출실적 1위는 「탈3위」의 중요한 전기가 되고 있다. 대우는 지난해 1조9천2백93억원어치를 수출, 난공불락같던 삼성·LG전자의 아성을 허물고 창사이래 처음으로 1위업체로 도약했다. 배회장은 이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2000년대 글로벌 생산기지 확충을 통해 세계최대의 백색가전 메어커로 도약하겠다는 중장기플랜을 수립했다. 이같은 성과와 청사진은 만년3등론의 부정적 인식을 털어냈으며 세계적인 전자업체로 부상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주었다. 그의 야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TV타이쿤(재벌)」도 꿈의 하나. 지난해 「다잡은 고기를 놓쳤던」프랑스 톰슨 멀티미디어사를 다시 인수하면 그는 어느 업체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생산력과 첨단기술확보로 세계최대의 「TV왕국」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의춘> □약력 ▲1943년 서울생 ▲경기고(58년) 서울대 기계공학과(61) ▲미 MIT 공학석·박사(66∼69) ▲한국과학기술원 부교수(74) ▲대우중공업 기술본부장(76) ▲대우조선 부사장(79) ▲(주)대우기조실 전무(80) ▲미 MIT대 교수(84) ▲대우전자 사장(91),회장(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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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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