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리포트] 韓 재벌개혁 국제세미나 상반시각 씁쓸

[월가리포트] 韓 재벌개혁 국제세미나 상반시각 씁쓸 『지난 98년 9월 구조조정실적을 발표하는 대통령주재 민관 합동 경제대책회의를 앞두고 거의 모든 안건이 정리되었던 상황인데 갑자기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실적위주로 정리된 보고로는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같다며 뭔가 국민들을 놀라게(suprising) 해줄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얘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언론에 대서특필될 수 있는 호재라며 이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하더군요.』 지난 6일 뉴욕 맨하탄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한국의 재벌 - 전망과 문제점」이란 주제의 국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자로 참석한 유한수(兪翰樹) CBF금융그룹회장(전 전경련 전무)이 질의응답중에 발언한 내용이다. 50여명의 청중들은 큰 소리로 웃으며 한심하다는 표정들이었지만 기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곧바로 이어진 중간 휴식시간에 유회장에게 발언의 진위여부를 묻자 『듣지않은 얘기를 했겠습니까』라고 펄쩍 뛰었다. 그렇다면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대통령주재 회의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추진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실제 빅딜 논의가 물밑에서 이뤄지던 차에 대통령주재 회의가 열리게 돼 안건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서둘렀을 가능성 등을 묻자 유회장은 『당시 삼성이 대우전자를 가져갈 이유가 없었던 것 아닙니까』라며 직접 들은 얘기를 한 것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전화를 한 당국자의 신분에 대해서는 고위당국자라고 얼버무렸다. 유회장의 발언대로 대통령주재 회의에서 「한 건」 올리기 위해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빅딜이 정부주도로 시작된 것이라면 이를 추진한 정부당국자를 가려내 책임을 엄중히 따져야 할 일이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빅딜때문에 대우문제에 대해 조기에 정면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게 돼 후유증이 커진 상황인데, 이 빅딜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 추진되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회장이 내막을 정확히 모른채 전화통화의 액면만 갖고 정부의 정치적 행태를 비꼬는 재료로 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라면 유회장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외국인들에게 한국 정부 및 경제계의 수준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지 걱정스럽다. 이날 세미나에 또다른 한국측 주제발표자로 참석한 이필상(李弼商)고려대 경영대학장은 한국의 재벌 개혁은 현재까지 낙제점이라며 「정치개혁, 금융개혁, 정부개혁 및 투명성 보장」 등이 이뤄지지 않는 한 재벌개혁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재벌개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휴 패트릭 컬럼비아대학교수, 앨리스 암스덴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수 등 미국측 참석자들은 재벌개혁이 자칫 한국 재벌의 강점마저 죽이는 쪽으로 진행될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암스덴교수는 일부 업종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는게 재벌의 강점덕분이라며 향후 과제는 중견재벌들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4대재벌과 경쟁시키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미국인 토론자들은 한국의 장래가 밝은 편이라며 성공적인 개혁을 위한 대안 제시에 열심인 반면, 한국인 주제발표자는 한국의 현실, 특히 한국정부를 형편없이 깎아내리거나 공허한 이상론만 펼쳤던 기묘한 세미나였다. /뉴욕=이세정특파원 boblee@sed.co.kr 입력시간 2000/10/11 19:05 ◀ 이전화면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