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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 지은 지 30년이나 돼 곳곳에서 물이 새는 고덕주공7단지 아파트 전용 55㎡의 값이 6억2,000만원까지 치솟았다. 5년 전 3억원에 불과했던 아파트다. 더욱 놀라운 것은 후에 집주인이 전용 85㎡의 새 아파트를 받을 때 1억4,000만여원의 현금을 덤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2011년 11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이 단지는 1년 반이 다 되도록 아직 시공사와 본계약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 경기 침체로 사업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새 아파트와 현금 1억4,000만원(무상지분율 163%)'이라는 '마법'이 발목을 잡은 것.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는 시공사와의 본계약까지 건너뛰고 조합은 지난해 7월 관리처분총회를 열기도 했지만 사업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쌈짓돈을 든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고 건설사는 어떤 출혈을 감내하고서라도 사업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됐다.
하지만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한 최근의 정비사업장은 각 주체의 '이전투구'장이 돼버렸다.
각종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다 소송은 난무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늘어지는 사업 탓에 분담금 폭탄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조합 내부, 조합과 주민, 주민과 시공사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의 문제는 무엇일까.
◇과도한 개발이익이 비극의 발단=전문가들은 최근 정비사업을 둘러싼 문제의 시발점이 '개발이익'이라고 지목한다. 당초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추진되던 정비사업이 2000년대 중반기를 거치면서 막대한 개발이익을 낳게 되자 공공성은 퇴색하고 수익사업으로만 변질됐다는 것이다.
권순형 J&K부동산연구소 대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조에서 명시하듯 재개발ㆍ재건축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공익성을 목적으로 하는 정비사업"이라며 "하지만 거품기에 수익사업으로 변질됐고 거품이 꺼지면서 개발이익이 현저하게 줄어들자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문제가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이익에 눈이 먼 주민들은 주거환경 개선과는 상관없이 자산가치 증식을 위한 구역지정에만 열을 올렸다. 여기에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개발구역이 과다 지정됐고 거품이 꺼진 지금에 와서야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줄어든 개발이익에 '이전투구' 횡행=거품이 꺼지고 정비사업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지 않게 되자 갈등이 시작됐다. 우선 줄어든 개발이익을 둘러싼 조합과 비상대책위 간 내부 다툼이 포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불투명한 사업운영으로 개발이익을 전용하던 조합의 민낯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옥수재개발 12구역의 사례는 유명하다. 지난해 7월 옥수12구역 비대위는 조합장이 노래방ㆍ식당 등에서 수백만원의 돈을 쓰며 조합 운영비를 전용해왔다고 총회를 열어 조합장을 해임했다. 하지만 조합장이 법원 허락 없이 연 총회는 무효라며 버텼고 급기야 비대위 측이 조합 사무실 유리창을 깨고 난입을 시도했다. 결국 경찰서 기동대가 출동해 주민 6명을 연행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옥수 12구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비사업 비대위는 조합이 불투명한 회계처리로 사업 수익을 착복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합의 비리행위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합과 비대위 간 소송전으로 사업이 개점휴업인 곳도 상당하다. 2001년 시공사를 선정한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재건축사업은 추진위원회 사업 방식에 불만을 품은 신반포2차정상화위원회가 제기한 소송만 60여건에 달해 10년여 째 사업이 제자리다.
◇후진적 제도…갈등 증폭시켜=표준화되지 않은데다 비합리적인 절차도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동진 바른재건축재개발전국연합 기획실장은 "국토해양부가 2003년과 2006년 표준정관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워낙 도정법이 많이 개정돼 사실상 표준정관대로 조합정관을 만들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그렇다 보니 비전문가인 조합이 임의적으로 만든 정관에 따라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소송도 빈번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합이 선정한 용역업체가 개별방문을 통해 징구하는 서면결의서 위조는 정비사업의 고질적 병폐로 꼽힌다. 더욱이 서울시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총회 참석 토지등소유자 대비 서면결의자의 평균 비율은 추진위가 75.2%, 조합이 70%에 달한다.
이렇게 조합이 총회 결의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정비사업마다 총회 결의 무효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에 따라 사업이 지연되면서 추가 분담금이 쌓이게 되는 악순환을 낳게 된 것이다. 아울러 관리처분총회 이전까지 공개되지 않는 추가 분담금도 사업을 지연시키는 갈등의 한 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같은 정비사업의 병폐를 차단하기 위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09년 도입한 제도가 바로 공공관리제도다. 하지만 여전히 공공관리제도 적용을 받지 않는 구역이 전체의 50%에 달하는 실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태조사 등을 통해 옥석이 가려지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구역이 조합이 결성돼 시공사 선정까지 마친 단계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문제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