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령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일본식 장기 불황을 염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들 한다. 세상이 흉흉하면 여러 소문이 나돈다. 인구가 장기 경제 성장에 중요한 요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일본과 유럽을 예로 들어보자.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령화와 버블 붕괴뿐 아니라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세계 경제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환율이 달러당 250엔에서 1995년에는 90엔대로 불과 10년 만에 60%가량 절상됐다. 우리나라 환율로 보면 1,000원에서 400원이 된 셈이다. 엔고로 인해 해외로 공장이 나가는 산업공동화가 핵심 이슈였다.
미국은 일본에 자산을 파는 등 1980년대 후반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경기 하락 국면이 1991년 3월에 끝났다지만 회복은 늦었고 실업률은 상승했다. 이후로도 미국 제조업 경기는 제대로 반등하지 못했다. 서비스 경제로의 이행에는 오랜 시간과 고통이 수반됐다.
하지만 저변의 흐름이 변하고 있었다. 1995년에 넷스케이프가 상장됐고 1996년에는 야후가, 1997년에 아마존이 상장됐다. 1989년 세계 10대 정보기술(IT) 기업 중 히타치·파나소닉·도시바 등 일본 기업이 8개나 됐다. 하지만 불과 10년 후인 1999년 세계 10대 IT 기업 중 일본은 소니 하나만, 그것도 10위로 턱걸이하고 있었다. 10개 중 7개가 미국 기업이었다. 일본은 소프트웨어 사회로의 흐름에서 처절하게 뒤떨어졌다.
유럽 경제는 고령화보다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통화 통합으로 환율을 하나로 묶어놓다 보니 환율이라는 가격을 통해 각국 경제가 조정되지 않는다. 그리스는 환율이 크게 절하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지만 유로화로 묶여 있어 그러지 못한다. 자국 통화 가치를 싸게 만들지 못하다 보니 비싼 통화 가치에 부응하게끔 경제를 조정해야 한다. 단위 노동당 비용을 낮추고 효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긴축을 하고 실업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조정에도 오랜 기간이 걸린다. 날씬한 옷을 사 놓고 다이어트를 해 맞춰야 하는 격이다. 둘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EU)이라는 큰 배에 같이 붙어 연명하면서 구조조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미국은 158년 역사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지만 유럽은 대형 금융기관이 파산했다는 말은 없다.
고령화가 되면 장기적으로 저성장은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성장과 장기 불황은 다르다. 고령화가 장기 불황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본질적인 것은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느냐, 그리고 고부가가치 경제로 전환해 국내에서도 고용과 투자를 계속하느냐의 여부다. 우리는 장기 침체를 피하면서 질 좋은 저성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런 상태는 고령화와 양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