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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발방지를 약속한 지 불과 반년도 안돼 또다시 원전 부품 위조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11월 한빛(옛 영광) 5·6호기에서 품질 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공급된 사실이 드러나 한동안 가동이 중단됐고 원전 당국이 재발방지 대책까지 마련했지만 5개월 만에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당시 전수조사를 통해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력 위기를 이유로 땜질 처방에 급급했던 원전 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홍석우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긴급브리핑을 갖고 가짜 원전부품이 발견됐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원전 부품 납품업체 8개사가 한국수력원자력에 제출한 해외 품질검증기관의 품질검증서를 검토한 결과 60건의 서류가 위조된 것으로 나타난 것. 위조된 검증서를 통해 원전에 납품된 제품은 237개 품목, 7,682개 제품으로 8억2,000만원에 달했다. 특히 영광 5호기와 6호기에 미검증 부품의 98.4%가 집중 납품돼 가동을 중단했다. 가짜 부품 때문에 원전 가동을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곧바로 민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두 달 간의 일정으로 원전 납품 관련 품질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그해 연말 발표된 원안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전에 납품된 부품 가운데 12개 품목에 걸쳐 총 694개 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고리 2호기와 영광 1·2·3·4호기에 납품된 180개 품목, 1,555개 부품의 시험성적서도 위조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최근 10년간 위조된 품질검증서나 시험성적서를 이용해 한수원에 납품된 원전 부품이 561개 품목, 1만3,794개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정부는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1월 '원전산업 종합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더 이상 품질보증 서류 위조와 납품 비리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납품 비리의 원인이 됐던 발전소별 구매 기능을 없앴고 모든 구매 관련 업무를 한수원 본사 내 전담조직에서 일괄처리 한다는 방안도 냈다. 조작이 빈번했던 품질 보증서류도 한수원이 국내외 시험인증기관으로부터 직접 받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위조 부품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납품업체가 아닌 국내 시험기관이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이다. 정부의 대책에 여전히 구멍이 크고 원전 건설의 모든 영역이 썩어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지난해 처음 사태가 불거졌을 때 정부가 모든 원전 부품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는 600만개가 넘는 원전 부품을 모두 조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특정 부분에서 이상 징후나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분야 부품만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사태를 더욱 키운 것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그때도 지적했지만 미리미리 전수조사를 해서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