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오는 22일 지다에서 열릴 석유수요국ㆍ산유국 회의에서 원유 증산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날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검증 받게 된다. 원유가격이 배럴당 140달러 가까이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만으로는 원유 공급부족 및 이로 인한 유가 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를 일정 수준 이하로 통제할 의지를 피력한 것은 미국 및 여타 석유 수입국들의 외교적인 승리를 뜻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고유가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금까지 고유가의 원인이 자신들의 감산정책이 아니라 투기세력과 정유능력의 한계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ㆍ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의 수요 증가로 인한 원유 수급불안을 더욱 악화시켜왔다. 원유가격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원유 수출국가의 연합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 사이 호전적인 산유국들은 고유가 기대심리를 부채질하고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결단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석유 문제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발언권이 큰 이유는 OPEC 국가 중 증산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량을 하루에 20만배럴씩 증산한 970만배럴까지 늘린다 해도 국제유가가 얼마나 안정될지 의문이다.
유가의 실질적인 가격안정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떤 원유를 얼마에 내놓느냐에 달렸다. 질 낮은 원유를 증산해봐야 소용이 없다. 깜짝 놀랄 만한 낮은 가격을 매겨 기준 유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감행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확한 원유 매장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통해 원유가격을 떨어뜨리지 못한다면 산유국들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OPEC에서의 지위 및 미국과의 관계도 악화될 것이다. 중동 정유업체에 대한 투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하락 자체를 꺼리는 이상 상황이 좋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