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학교교육 본질은 밥이 아니다


얼마 전 만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은 "한국 발레 무용수들의 신체나 표현력, 스킬 등은 글로벌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훌륭하다"면서도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안무가는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그리고 입학한 후에도 스킬 위주의 교육을 받다 보니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안무가를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 최 단장의 말은 한국의 예술 교육뿐 아니라 교육 전반을 고스란히 대변한 말이기도 하다.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한국 교육은 정답 맞추는 스킬에 집중하고 규격화된 스펙이 판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받는 방식이나 시험 문제 등은 내가 학생이던 1인당 GDP 2,000달러 시대나 30년이 지난 1인당 GDP 2만달러 시대나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창의적 인재 육성 환경 조성을 최근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IT 산업의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IT 산업의 중심이 기술과 효용을 중시하는 하드웨어에서 감성과 휴머니티를 중시하는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국내 전자업계는 산업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인지하지 못한 것도 주도하지 못한 것도 다 유능한 인재가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인 인재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얘기들과 같은 맥락이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려면 원론적인 얘기지만 그에 걸맞은 교육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더라도 대학 등 교육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교육의 현실이 이렇듯 매우 급한데도 지금 교육 판은 무상 급식에만 몰두하고 있다.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린 시절에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아야 하지만 운동장이 없거나 있던 운동장도 작아지는 학교들이 부지기수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이 지난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전국에서 초등학교 399개, 중학교 194개, 고등학교 109개교가 시설 공사로 인해 운동장이 줄어들거나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려면 미술ㆍ음악ㆍ체육 같은 정서 교육이 필수일진대 올해부터 도입된 교과 집중 이수제는 대체 무슨 커리큘럼에 기초한 것인지 이들 교과목을 동시에 배우지 않고 1년은 음악만, 1년은 미술만 배운다.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두루 경험해야 인성과 창의성 함양을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학습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 아래 한꺼번에 몰아서 음악 1년, 미술 1년씩 가르치는 이 제도는 감성이 중시되는 21세기에 효율만을 앞세우는 20세기식 교육으로 퇴행하는 발상이다. 교육의 질·국가 장래 생각해야 융합ㆍ통섭이 세계적인 대세라는데 1960년대 방식의 고교의 문과ㆍ이과 구분 시험 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도 빠른 시일 내 결론을 내야 할 교육 과제 중 하나다. 지난해 6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김수철 사건'직후 교육 당국은 치안 위험 지역에 있는 학교 1,000곳을 골라 경비실을 설치하고 청원경찰을 배치하겠다는 등의 계획을 밝혔지만 1년이 지나도록 실행된 것은 거의 없다. 운동장에서 맘대로 뛰어놀기도 어렵고 그림 그리고 싶은데 음악만 하라고 하고 아무나 들어와 성폭행 범죄를 저질러도 속수무책인 공간에서 밥만 공짜로 주면 그만인가. 공짜 밥을 주니 마니 정치적 대립으로 시간만 보내다 선진국보다 그나마 제대로 갖춰지지도 못한 교육의 질, 안전의 질이 지금보다 더 후퇴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은 한 끼 공짜 밥보다 교육의 백년대계와 국가의 장래를 걱정해야 할 21세기 무한경쟁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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