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과학입국 다시 불 지피자] 과기인들 "50년전이 더 좋았는데…"

[2011 신년 기획]<br>KIST 설립 당시엔 대통령보다 월급 많아<br>정책 일관성 유지위해 장관교체도 안해

과학기술인들은 향수병에 걸렸다. 미래를 설계하고 예측하는 그들이 50년 전이 좋았다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왜 과학기술인들은 지난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을 그리워할까. '꾐(?)'에 빠져 미국에서 돌아온 20명의 과학자 중 5명이 3~4년 만에 3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을 정도로 고달프고 척박한 환경이 지금보다 더 나았단 말일까. 김영섭 서울대 공과대학 객원교수는 한마디로 의문을 정리했다. "과학기술은 국가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첫 출발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설립으로 시작됐다. 당시 연구원들의 월급은 대통령보다도 많았음은 물론 국립대 교수 월급의 세 배에 달했다. 한 해 뒤인 1967년 4월 과학기술정책 진흥 전문 부처로 과학기술처를 설립했다. 1970년대에는 한국 과학의 총본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덕연구단지를 조성하고 공업화에 기반이 되는 기술 습득과 개량을 위해 각종 출연연구소를 설립했다. 특히 과학기술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장관조차 함부로 교체하지 않았다. KIST 초대원장을 지내고 과학기술처를 맡은 최형섭 장관은 무려 7년간 재임이라는 최장수 장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0년대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술보호주의가 강화되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모방과 개량에서자체 기술 개발을 위한 선진국 추격형으로 탈바꿈한다. 1982년 과학기술처의 '특정연구개발 사업' 등 국가연구개발 사업이 이 시기에 진행됐다. 지식정보화 사회인 1990년대에 들어서며 우리 과학기술은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처가 중심이 돼 6개 부처가 공동으로 부처 합동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며 반도체ㆍ정보통신 등 첨단기술의 자립기반을 마련했다. 2004년에는 국가기술혁신체제(NIS)를 구축, 기초연구 및 인력양성에 중점을 뒀다. 현 정부 들어와서는 2010년 10월 우리 과학기술의 미래비전 및 목표를 담아 2040년을 목표로 '과학기술 미래비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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