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굴지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의 매각과 리먼브러더스의 몰락으로 미국 금융산업이 대공황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승자와 패자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17일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가장 확실한 패자는 미국 4위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와 이 회사의 주주, 종업원이다. 특히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펄드 회장은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됐다. 펄드 회장은 올해 4월 "최악의 신용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5개월 만에 그 자신이 파국을 맞고 말았다. 펄드 회장은 2,200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퇴직 보상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땅에 떨어진 명성은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 주민도 패자에 속한다. 파산하거나 매각된 투자은행들이 대규모 감원에 나서면 뉴욕의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금융부문에서 수 만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뉴욕 시민들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대규모 실업사태로 뉴욕의 재정수입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면서 2010년에 뉴욕시가 2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대 승자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다. BOA는 리먼브러더스의 인수를 검토했다가 막판에 메릴린치로 돌아서 500억 달러에 세계 최대의 증권사인 메릴린치를 손에 넣었다. 메릴린치의 인수가 완전히 마무리되면 BOA는 은행산업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년간 BOA는 씨티그룹를 따라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해왔다. BOA의 주가는 메릴린치 인수 발표 후 첫날에 21% 이상이나 폭락하고 신용등급이 강등당했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주가가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스캐롤라이나는 큰 혜택이 예상된다. 메릴린치는 글로벌 비즈니스 본부를 뉴욕에 두고 있지만 이 회사를 인수한 BOA의 본사가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어 점차 이곳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메릴린치의 존 테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도 이번 협상으로 상당한 이득을 확보했다. 금융위기가 정점을 향해 가면서 금융산업 판도도 바뀌고 있다. 월가를 대표하던 투자은행들이 지고 고객 예금을 바탕으로 영업을 하는 전통적인 은행들이 금융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투자은행 중심의 뉴욕 월가가 200여 년전 탄생했지만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리면서 이제 더 이상 월가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고객 예금 유치와 점포망 구축에 주력해온 구시대의 은행들이 뜨면서 금융계의 세력균형도 상업은행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1년 전 월가의 5대 투자은행 중 이제 남은 것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2곳 뿐이다. 반면 상업은행인 JP모건은 베어스턴스를, BOA는 메릴린치를 인수하며 세력 확장에 나섰고 웰스파고와 독일의 도이체방크, 스페인의 뱅코 샌탠더 등도 금융계의 강력한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