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경제민주화는 이번 대선의 최대 논쟁처가 될 것 같다. 지난해 무상 복지논쟁에서 재미를 본 야당은 올해도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선에서 이슈 선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가동해온 경제민주화 특위에 이어 5일에는 대선주자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경제민주화 포럼을 발족시켰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논의도 과거 한나라당 시절과는 현격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경제민주화 실현을 당 정강정책에 실은 후 의욕에 찬 초선의원들이 중심에 선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을 통해 야당의 수준에 버금가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담은 김종인 전 의원은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박근혜 경선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여기다 정치권으로부터 지난 4년여 동안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명박 대통령도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는 것을 대기업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며 정치권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 정치의 축인 여야 정당과 청와대까지 경제민주화를 시대의 당위라는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논의를 들여다보면 각자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생각의 차이가 크다.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만 있지 각론과 정책들은 제각각이다.
기업에만 부담 강요하면 경쟁력 잃어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와 형평을 추구하는 민주화가 만났으니 이런 모순은 애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는 사회 각 부분의 이해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가 들끓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관련정책들을 보면 모든 부담이 기업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당장 우리 대기업(재벌) 체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부터 금융산업분리ㆍ출자총액제한제도ㆍ집단소송제 등 기업의 투자와 경영 의지를 꺾는 것들 일색이다.
정치적으로만 보면 기업은 부유해졌으나 국민은 가난해졌으니 이를 되돌려야 한다는 명분은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논의가 활발해지는 만큼 차분히 짚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2008년 세계의 주요국들을 덮친 글로벌 금융위기나 현재의 유럽발 재정위기에도 한국은 비교적 무난히 위기를 넘겼거나 헤쳐나가고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 기업의 힘이다.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지만 수출은 여전히 늘고 있다. 수출입국이라는 모토아래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정상에 우뚝 선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체력이 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관련 논의에서 자주 거론되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주력해온 여당의 한 의원은 "우리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노사(勞使) 갈등이 아니라 노노(勞勞) 갈등이다"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누구나 주장하지만 정작 같은 노동으로 다른 임금을 받는 정규직의 존재자체가 비정규직의 차별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치인 거짓 가려내는 건 유권자 몫
경제민주화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적 형평을 높이기 위해 기업일방에만 부담을 강요하다 보면 기업의 경쟁력을 잃게 된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불균형은 다소 해소하겠지만 그 이후 우리 경제를 담보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구난방식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자칫 당장의 욕심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권의 높은 관심만큼이나 경제민주화가 그려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마이너스 평준화'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인들의 과장과 거짓말을 가려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소중한 한 표를 가진 유권자들의 몫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