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일] 제이 굴드


‘제이 굴드(Jay Gould) 같은 인간.’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주가조작이나 기업탈취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굴드 이후 처음’이라는 표현이 관용구처럼 쓰인다. 1836년 뉴욕 근교에서 태어난 굴드는 16세에 학업을 접고 측량기사로 일하며 철도주 투자로 돈을 모았다. 올챙이 투기꾼 시절부터 그는 그럴 듯한 정보를 남몰래 흘려 신문에 실리게 만드는 재주가 남달랐다. 월가 사상 처음으로 언론을 교묘히 활용한 투기꾼으로 손꼽힌다. 굴드가 날개를 단 것은 1867년. 이리(Erie)철도의 임원으로 선임되면서부터다. 최고의 블루칩 종목이던 이리 철도의 주가를 조작해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해운업자 출신인 거부 밴더빌트와의 경영권 경쟁은 ‘이리 전쟁’이라고 불리며 대통령 선거전보다도 숱한 화제를 뿌렸다. 지분 경쟁을 위해 판사와 정치인을 매수하고 경쟁회사에 무장세력을 보내 주식대장을 강탈하며 밴더빌트 철도회사의 기관차를 탈선시킨 적도 있다. 악명을 크게 알린 것은 1873년 ‘검은 금요일’ 사건. 순진한 그랜트 대통령까지 작전에 활용한 금투기로 주식시장 붕괴는 물론 미국 경제 전체를 장기 침체에 빠뜨렸다. ‘월가의 악마’라는 별명도 이때 붙었다. 이리철도에서 쫓겨난 뒤에도 그는 서부지역 철도와 전신회사를 사들여 미국 철도 총연장의 15%에 해당하는 2만5,000여㎞에 이르는 철도망을 운영했다. 세계 최대 전화회사인 웨스턴유니언(AT&T)도 한때 그의 소유였다. 끝없이 늘어나던 그의 부는 1892년 12월2일 증식을 멈췄다. 56세 나이로 사망할 때 유산이 요즘 가치로 약 522억달러. 역대 미국 부호 랭킹 9위지만 그는 부자보다 ‘악질 투기꾼’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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