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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현대ㆍ기아차 노조는 한바탕 파업놀음에 3,000만원에 가까운 이득을 챙겼지만 그 이상의 상처를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했다.
9일 현대차 노조가 밝힌 올해 임금단체협상 잠정합의 해설에 따르면 직원들은 성과급과 목표 달성 장려금 등을 포괄하는 타결 격려금 외에 기본급 인상분까지 포함해 1인당 2,879만3,897원의 인상 효과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중소기업의 대졸 신입 평균 연봉(2,453만원)보다 400만원 이상 많은 돈을 파업이 끝나고 1분기 만에 챙겨 가는 것이다.
현대ㆍ기아차 파업이 남긴 가장 큰 상처는 강성노조의 말도 안 되는 비상식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통했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국민이 1억원이 넘는 귀족노조의 생떼쓰기 관행이 바뀌기를 열망했으나 이번에도 노조의 힘 앞에 무기력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면 어디서나 매해 이뤄지는 것이 임단협 타결이지만 현대·기아차처럼 강성노조가 버티고 있는 회사는 노조 파업으로 올해도 1조5,000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손실을 입었음에도 관행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타결 격려금을 또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합리적인 관행이 성숙한 노사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자동차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한국 경제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현대·기아차 노조는 매년 타결 직후 통상임금의 300~500%와 100~950만원을 함께 받았다.
지난해의 경우 타결 격려금은 '통상임금의 500%+950만원'이었으며 10만원짜리 상품권은 별개로 또 지급됐다. 올해는 '500%+920만원'으로 지난해에는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여전히 직원들이 기본급 인상을 제외하고 타결 격려금 명분으로 받게 되는 금액만 평균 2,000만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다른 회사의 성과급 개념인 타결 격려금으로 빠져나갈 총 금액을 밝히기는 부담스럽다"면서도 "지난해의 경우 직원 한 명당 대략 적게는 1,900만원대에서 많게는 2,900만원대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기아차를 제외하고 현대차만 해도 17일간의 파업으로 1조225억원에 달하는 매출 차질이 생겼지만 명목상 성과급인 이 돈은 물론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근로자들에게도 똑같이 지급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과 강성노조의 합작품인 '파업 후 타결금' 관행은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상식적인 행태"라며 "이 같은 관행이 정상적인 노사 문화의 발전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에서는 타결 격려금 관행이 노사문화 후퇴뿐 아니라 연구개발(R&D) 분야 투자 위축과 협력업체에 대한 직간접적인 단가 인하 압력으로 이어져 결국 자동차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울산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 A씨는 "협력업체 육성, R&D 투자 등의 과제는 뒷전으로 미룬 채 타결 일시금처럼 남은 전답(田畓)을 돌려 먹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미국 GM처럼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건 시간 문제"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대표 B씨는 "파업기간의 매출손실과 영업이익 축소 등과 함께 (모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며 "상당수의 협력업체는 벌써부터 추석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금융권을 집처럼 드나드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현대차 직원들이 수천만원의 돈을 챙기는 동안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낌으로써 조성되는 근로자 간의 위화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협력업체의 한 근로자는 "우리 연봉은 현대차 평균 연봉인 9,400만원의 3분의1 수준"이라며 "이번 파업으로 일감이 줄어드는 바람에 우리 임금은 더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현대차 파업에 따른 협력업체 직원의 임금손실은 보상 받을 방법도 없다"며 "현대차 노조가 파업 직후 가져가는 돈 얘기를 들으면 속이 쓰리다"고 토로했다.
현대·기아차 노조처럼 협상 후 타결 격려금을 받는 대표적인 강성노조로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꼽힌다. 이들 노조 역시 매년 통상임금의 150~300%와 200~300만원을 타결 직후 받아 챙겼다.
전문가들은 투자 위축과 협력업체 부담 전가 등에 따른 업종 경쟁력 저하, 근로자 간 위화감 조성 등 무수한 부작용을 낳는 '파업ㆍ타결 격려금' 관행을 하루빨리 종식시켜 성숙한 노사문화를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타결 격려금을 뻔히 기대하며 아무 위험 부담 없이 쟁의에 나서는 것은 '게임의 룰'을 깨는 행위이며 정상적인 교섭 질서를 해치는 행태"라며 "노조의 각성뿐 아니라 사측 역시 타결 격려금을 일종의 당근책으로 제시하는 관습을 과감히 타파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